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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심야토론- 체벌은 필요할까?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작성일 2014-03-11 조회수 16416

아동권리 옹호 서포터즈 영세이버 5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진짜? 어우, 싫었겠다!”
지난 2월 21일 서울여성플라자 304호. 시계 바늘이 밤 10시를 지나치는 가운데 웃음과 공감에서 나온 탄식이교차합니다. 이곳 영세이버 5기 발대식과 양성과정에 참여한 5명의 대학생이 체벌에 관한 토론을 이어가던 현장이었는데요. 영세이버는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동안 국내외 이슈와 관련된 아동권리를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옹호활동을 직접 기획•진행하는 대학생 모임입니다. 아동권리 옹호 서포터즈로서 첫발을 내딛는 영세이버이자, 청소년기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청춘 다섯 명이 모여 체벌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그 뜨거웠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00분 심야토론 참여자]
 
  사진/ 지난 2월 21일 영세이버 양성 과정에 참여 중인 영세이버 5명이 체벌에 대한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수인(23), 허균(23), 류하미(22), 민소영(23), 이진화(22) 씨.

[들어가기 전에] 체벌이란?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체벌을 ‘정도에 상관없이 물리적 힘을 사용하며 이 폭력이 어느 정도의 고통이나 불편함을 일으키도록 의도된 모든 처벌’이라고 정의합니다. 보통 허용 가능한 범위라고 생각하는 ‘가벼운’ 신체적 벌과 가혹한 처사 역시 모두 체벌에 포함됩니다. 덧붙여 위원회는 무시하거나 창피주기, 으르기 등 비신체적이더라도 모멸적인 처벌은 아동권리협약과 양립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참고: 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8호

 

체벌의 기억 “왜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Q. 반갑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양성 과정 교육을 듣느라 피곤했을 텐데 토론에 참여해주어 고맙습니다. 먼저 체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험들을 이야기해볼까요?

민소영(이하 민)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뒤쪽에 앉은 친구들이 누구랄 것 없이 떠드는 분위기가 되자 선생님께서 ‘수업 분위기가 이렇게 좋지 않은 것은 모두의 책임이다’라면서 반 아이들 모두에게 양말을 벗고 책상에 올라가 앉으라 하시고 매로 발바닥을 3대씩을 때리셨어요. 평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셨던 분이시고 체벌의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셨기 때문인지 반감보다는 반성을 했던 것 같아요.

김수인(이하 김) 저는 반대의 경우였어요.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 평소 표현이 소극적이셨던 분이셨는데 어느 날인가 종례 때 조용히 하라는 지시에 아이들이 한번에 따르지 않자 “다시 올 때까지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있어” 하시고는 나가시더라고요. 남겨진 저희는 서로 ‘어쩌지?’ 하는 눈빛으로 어색하게 쳐다보고 있었죠. 그때 선생님께서 다시 들어오시더니 모두 한 대씩 맞아야 한다는 거예요. 충분한 이유나 설명도 듣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선생님과 반 아이들 관계가 좋지 않았죠. 나중에 친구들과 그때를 돌아보면서도 그랬어요. “그때 왜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날 그렇게 왁자지껄한 것도 아니었는데.”

류하미(이하 류) 중학교 때였어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그래서 집중이 잘 안 되는 수업 시간이었죠. 수업이 끝나자 한 친구가 “안녕히 가세요”하고 우렁차게 인사했는데 그것 때문에 맞았어요. 그 친구의 인사를 비아냥이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 친구를 나오라고 하시더니 뺨을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 친구가 뺨을 맞고 뒤로 밀려나는데 교실 뒤까지 따라가시면서 계속 때렸어요. 심하게 혼날 상황이 아니었는데 아이를 마구 때리시는 걸 보고 저나 친구들이 충격을 받았어요.

이진화(이하 이) 중학교 때 영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셨어요. 평소 인자하시고 품위 있으셨던 분이어서 무척 따랐죠.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친구가 말 실수를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무척 화가 나셔서 복도로 불러내고 뺨을 때리신 거예요. 그 친구가 얼굴이 온통 새빨개져서 들어왔고 선생님께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셨죠. 결국 학교에서 그 일을 알게 되어 선생님이 바뀌었어요.

체벌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Q. 체벌로 학교에서 조치가 취해졌군요. 이 외에도 체벌에 대해 어떤 조치가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요?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 출산 휴가를 들어가시면서 다른 선생님께서 오셨는데 체벌이 심하셨어요. 자로 손바닥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를 때리셨어요. 제가 3번 째로 머리를 맞은 학생이었죠.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 호기심이 많을 나이이니까 “왜요?”라는 질문을 한 것뿐이었는데 버릇이 없다고 여기신 것 같아요. 저는 질문하고 토론하는 게 좋은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하라고 칭찬을 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물었던 것이지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그런 체벌이 이어지니까 하루는 우리 반 남자 아이들이 ‘더는 못 참겠다’며 교장실에 모여 가서 항의했어요. 결국 선생님이 바뀌었죠.

Q. 그때 교장 선생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많이 놀라셨어요. 그런 전례가 없었거든요. 아이들이 특별히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의사결정에 참여하던 학교도 아니었고요. 다행히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이렇게 올 정도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받아들이시고 신속하게 조치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 측에서는 학생에게 참으라고만 했어요.

허균(이하 허) 다른 학교에 다니던 친구 이야기예요. 그 친구가 매를 맞았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그런데 경찰관이 와서 조사라고 한 게 ‘사랑의 매였습니까, 아니었습니까?’ 라는 질문 하나였대요. 교사는 당연히 사랑의 매라고 주장했고요.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 이후 친구랑 그 선생님의 관계도 회복되지 못했어요. 저는 체벌에 항의해서 잘 해결된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사진/ 체벌 토론에 참여한 영세이버들은 어린 시절 자신이나 주변에서 체험했던 체벌의 경험을 나누며            
                  체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쳤습니다. 왼쪽부터 영세이버 5기 민소영, 이진화, 류하미 씨.                  

‘사랑의 매’는 있을까?

Q. 듣고 보니 ‘사랑의 매’란 말도 생각해 볼 거리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사랑의 매’가 가능하다고 보나요?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아요. 저는 처음에 말한 단체 체벌 때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체벌은 갑자기 생긴 분노에서 온다고 봐요. 체벌이 꼭 아이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자신의 화를 표출하느라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제가 처음 과외를 했을 때 아이에게 숙제를 안 하면 팔굽혀펴기를 시켰어요. 이 아이가 성실하게 공부하는 습관을 키워주고 싶다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벌이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제 뜻대로 하지 않으니 팔굽혀펴기 횟수를 10번, 20번, 30번 늘려갔죠. 나중에는 저도 아이에게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수업이 끝나고 나니까 ‘내가 이 아이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그저 아이 고집을 꺾으려 독하게 굴었던 것이구나’ 싶어서 씁쓸했어요. ‘사랑의 매’란 것도 그렇다고 시작해요. 좋은 의도로 손바닥, 발바닥을 가볍게 때리는 것으로 시작해 강도가 점점 올라가는 거죠.

저는 체벌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그럼 아이들을 어떻게 통제하지?’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영세이버를 지원하면서 체벌근절 Q&A 책자를 읽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우리 사회가 폭력을 범죄로 보면서 폭력으로 아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 같아요. 체벌은, 결국에는 강자가 약자를 때리거나 고통을 주는 일이에요. 제가 그 책자를 읽기 전에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체벌을 대체할 방안을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체벌을 대체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일 테지요.

맞아요. 저 역시 사랑의 매란 말은 포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폭력이죠. 사랑이라고 말은 붙였지만 사랑해서 때리는 것은 아니에요.

체벌만큼 아픈 모욕적인 처벌

Q. ‘사랑의 매’처럼 때리거나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처벌도 있지만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처벌도 있잖아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엽기적인 처벌을 하던 선생님이 생각나요. 중학교 때 기술가정 선생님이셨는데 맥가이버 칼을 들고 다니면서 우리들이 무슨 잘못을 하면 구레나룻을 한 쪽만 싹둑 잘랐어요. 다들 ‘차라리 때리지’ 그랬다니까요.

여자들은 사실 구레나룻을 잘리는 게 어떤 건지 잘 와 닿지 않는데 그게 어떤 의미에요?

자존심이죠! 그 나이 남자 아이들에게 구레나룻은 자존심이에요. 그걸 잘린다는 건 곧 굴욕이고요. 그래서 구레나룻을 잘리고 나면 윗머리를 내려 가리든지 반대쪽도 길이를 맞추어 자르든지 그도 아니면 아예 머리를 매우 짧게 잘랐어요. 저도 그랬고요(웃음). 그렇지만 항의는 해보지 못했어요. 제가 살던 곳은 어떤 처벌을 받으면, 그게 무엇이든 어떤 이유였든 ‘네가 잘못했겠지’라고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사진/ 중학교 시절 구레나룻을 자르는 굴욕적인 처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허균(오른쪽) 씨.    

저는 부모님 말씀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저는 대학 들어갈 때까지 부모님 말씀대로 살던 착한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제 꿈을 좇는 게 부모님은 마음에 안 드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나 이만큼 했다’고 성과를 보여드리면 “그런 걸 증거랍시고 보여주는 거냐” 그러시는 거예요. 당신 바라는 대로 살지 않는 데 따른 처벌이었는데 그 어떤 처벌보다 아팠어요. 이제 그 말을 들은 지 반 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지금도 집에 들어가는 순간이면 그 말이 계속 들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과 대화도 제대로 할 수 없고요.

말이 정말 아픈 것 같아요. 저는 군대에 있을 때 근무지를 자주 옮긴 편이었어요.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일을 해야 하니 실수가 많았죠. 그런데 선임이 ‘너는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냐’로 시작해서 폭언을 퍼부었어요. 그때 그 말투며 표정,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하나 하나가 아직까지 생생해요. 저라고 못하고 싶어서 못 했겠어요? 방법을 몰랐던 것인데 가르쳐주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았어요. 우리도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다그치는 데 익숙한 것 같아요.

체벌의 되풀이, “배웠던 대로”

Q. 그런데 우리는 왜 체벌을 하고 있을까요? 어쩌다 우리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아까 말한 그 아이 과외를 할 때 이야기를 조금 더 할게요. 그 친구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체벌을 완전 반대하는 입장이었어요. 그런데도 체벌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 아이를 어떻게든 앉혀서 내 말을 듣게 해야겠는데 이미 알려진 방법이 딱 있잖아요. 저절로 그 방법, 그러니까 체벌을 쓰는 거예요. 다른 방법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체벌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 방송부원이었는데 방송부에서는 선후배 사이에 위계질서가 굉장히 셌거든요. 머리를 풀고 다녔다고 영문도 모른 채 손가락질 당했고, 불을 끈 채로 한 명씩 불러서 눈물 나게 혼났어요. 그때는 ‘내가 선배가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제가 선배가 되고 나니 똑같이 하더라고요. 일을 제 시간에 빨리 빨리 해야한다는 압박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바쁜데 후배들이 헤매고 있으면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혼부터 내는 거죠. 지금은 그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연락도 못해요.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고 말하는 미래를 바라다

저는 신체적으로든 인격적으로든 벌을 주는 것보다 아이의 잘못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아이를 때리는 것은 아이가 반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이 미움을 받는다고 여기게끔 하거든요.

물론 단체 생활에서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한 건 맞아요. 하지만 체벌이 허용되는 곳에서는 폭력과 규제를 교사가 자의적으로 정해요. 그리고 교사도 사람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개인의 감정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요. 때문에 규제와 체벌을 구분하고 교사의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한 일 같아요.

돌이켜 보면 예전에는 ‘어떻게 저러지?’ 싶게 아이들을 때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잖아요. 자나 매도 아니고 대걸레 손잡이며 쇠몽둥이 등등으로 때리던 걸 지금 시각으로 보면 야만적이다, 폭력적이다라고 느끼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자로 손바닥을 때리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떻게 애들을 때릴 수가 있지?’라고 보게 될 거라고, 폭력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제가 생각하는 허용 범위는 아이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까지예요.

저도 동의하지만 말로 타일러도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맞아요. 더군다나 학생인권 조례 이후 체벌이 불가해지면서 교권 침해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건 아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권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신의 권리에는 그에 따르는 책임,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교사에 대한 존중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잊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조례 이전에 교사가 아이들에게 신임을 얻기 보다는 체벌에 기대어 권위를 세워왔기 때문에 스스로 지위를 떨어뜨린 면도 없지 않을까요? 그러다 체벌이 불가해지니 학생을 포기하는 경우도 저는 보았고요. 체벌의 대안을 찾지 않고 다시 체벌의 권위에 기대던 과거로 돌아가는 게 해답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그 대안을 찾는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사진/ 토론에 참여한 김수인(가운데) 씨는 자신이 과외 학생에게 체벌했던 경험을 고백하며 폭력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져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각자 대안을 떠올리느라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농담 반 진담 반 ‘심야 100분 토론’이라고 시작한 토론은 어느새 100분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100분 동안 토론은 어릴 적 이야기를 떠올리며 웃음꽃에서 체벌의 본질을 짚어내는 결연한 목소리로 바뀌었는데요. 비록 이렇다 할 대안을 100분 여 시간 동안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론으로 배워오던 아동권리를 체벌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적용해보고, 우리 사회가 아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다섯 명을 비롯한 5기 영세이버는 2014년 한 해 동안 체벌과 같이 우리 생활 속에서 아동권리 이슈를 끄집어 내어 우리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이를 위한 캠페인 활동도 직접 꾸려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아동보호정책팀에서도 체벌을 비롯해 아동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대응할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글 고우현(미디어팀) / 사진 김상준(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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