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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30 세상] 분리와 구별이 없는 세상
보도자료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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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이를 둔 한 부모가 “제발 아이들 학교는 가게 해주세요. 도와주세요”라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 대표들도 이에 질세라 무릎을 꿇었다. “우리도 좀 도와주세요. 가양2동 좀 살려주세요.” 그렇게 특수학교 설립 2차 주민공청회는 파행됐다. 나는 강서구 30년 토박이로서, 아동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으로서 이날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함께 자리에 있었다. 강당 이곳저곳에서 드잡이와 고함이 오가는데 스피커에서는 존 레넌의 ‘이매진’이 흘러나왔다. 평화와 인류애를 노래하는 존 레넌의 목소리와는 달리 공청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릎 꿇은 부모의 사진이 실린 기사를 언론은 쏟아 냈고, 시민들은 분노했다. 지역 주민은 파렴치로 몰려 온갖 욕을 들어야 했다. 가난과 장애를 영구임대 아파트로 구별하고 도심으로부터 분리한 정책의 실패가 지난 20년간 상처로 쌓인 조그만 동네다. 장애를 가진 주민의 수가 서울 평균의 4배 가까이나 되고, 500m 거리에 장애 시설도 8곳이나 있는데 특수학교까지 세워 분리와 구별을 심화시켜야 하냐는 주민들의 우려는 님비라는 딱지와 함께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지역 주민과 장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남게 된다. 장애 아동 부모와 지역 주민을 대결 구도로 공개적인 싸움을 붙이고, 언론과 시민이 지역 주민을 공격하는 지금의 방식은 당장 특수학교 건물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특수학교가 지역 사회에서 냉대를 받고 섬처럼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의 특수학교가 필요한 장애 학생은 1만3000명 정도다. 특수학교 수가 부족하다 보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35% 수준인 4500명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는 29%로 더 낮아진다. 앞으로 많은 특수학교가 서울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에 들어서야 한다. 2015년에도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장애 아동 부모들은 무릎을 꿇어야 했고, 지역 주민들은 님비로 몰렸다. 2017년은 강서구 가양동에서 그러했다. 현재 특수학교 신설은 시도교육감이 임의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투표로 뽑히는 직선제 시도교육감이 특수학교 설립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서울시교육감은 특수학교가 없는 8개 구에도 특수학교를 계속 세워나가겠다고 했지만 당장 내년 교육감 선거에서 뽑히지 못하면 가공의 희망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문제는 특수학교가 ‘특수’한 시설이 아니라 일반 시설이 되어야 해결할 수 있다. 학교를 새로 지을 때 주민 투표에 부치지 않는다. 장애인 주차구역은 장애인이 몇 명 사는지 검토해서 만들지 않는다. 특수학교도 마찬가지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며칠 전 기초지방자치단체마다 특수학교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특수학교의 필요성에 공감했던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예산 반영이 이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 유·초·중·고로 분리되어 있는 일반학교처럼 특수학교도 단일 과정으로 장애 유형에 따라 지역 곳곳에 소규모로 생긴다면 좀 더 주민들과 밀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동네에 있는 편의시설까지 중복으로 욱여넣어 커질 대로 커진 수백 명 규모의 건물을 지역 주민과의 갈등 속에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분리와 구별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작고 아담한 특수학교가 우리 일상 속에 당연한 풍경으로 다가오는 날을 ‘이매진’을 들으며 상상해 본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