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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데이터? 진짜 성과는 이런 것이죠 - 해외 아동보호 담당 인터뷰
해외사업
20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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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14년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방글라데시 홍등가 지역 아동을 지원해 왔습니다. 도움을 받았던 아이들이 자라나 다시 도움을 주는 어른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의 사업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중 약 6년간 사업을 담당해온 정상영 매니저와 함께 못다 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방글라데시 사업 모니터링 중 현지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정상영 매니저(왼쪽 두 번째).



Q.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오랫동안 이어온 사업이 종료되었네요. 언제 처음 이 사업을 맡게 되셨나요?

제가 2015년 2월에 세이브더칠드런에 입사했고 하반기에 방글라데시 통합지원사업을 맡았어요. 보통 사업을 계획하면 수요 조사도 진행하고 인력도 선발하는 시간이 걸리거든요. 저는 사업 기획이 완료되고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타이밍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Q. 보건사업이나 교육사업과 달리 보호 사업은 조금 생소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동보호 사업이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운영하는 전체 국제사업의 10% 미만을 차지해서이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이 사업도 보건과 교육 지원이 함께 진행되는 통합지원사업입니다. 만, 홍등가라는 특수한 환경이기 때문에 아동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개인적으로도 아동보호사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운이 좋게 기관의 아동보호 사업에 많이 투입됐었네요.


Q.  아동보호사업에 관심이 많으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국제사업에 워낙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많다보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약간 틈새시장이라고 생각했고요. 하하. 사실 사업을 담당하다 보니 이게 진짜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더욱 들었어요. 더 잘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Q. 아동보호사업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아동의 권리는 생존, 보호, 발달, 참여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비전도 나와 있듯이 아동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Be Protected)는 아주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죠.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려보면 아동 보호는 네 가지 전략 분야로 나뉘어요. 첫 번째는 폭력으로부터의 아동 보호인데요 ‘체벌 없이 아이 키우기’처럼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훈육하는 방법에 대해 인식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적절한 보호(Appropriate Care)가 있는데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거나, 재난 등으로 부모와 떨어지는 것처럼 특수한 상황에 놓인 아동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에요. 세 번째는 유해한 환경에서 일하는 아동을 보호하는 것으로 아동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네 번째는 시스템 강화인데요, 아동 보호가 침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동이 누구한테 신고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지 일련의 메커니즘을 구성하고 각각의 단계에서 아동의 인권이 구체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해요.


▲ 아동학대 사건 발생시 신고 절차에 대해 교육 받는 방글라데시 아동


Q. 그럼 네 가지 요소가 한 사업 안에 녹아들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전체적으로 다 들어간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저희 사업의 가장 핵심을 꼽자면 두 번째로 말씀드린 적절한 보호에 중점이 있습니다. 홍등가의 유해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적절하게 보살피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 <세이프홈> 같은 아동친화적인 보호시설을 만들게 된 거죠.


Q. 사업 담당자의 역할이 중요하겠어요. 평소 하시는 업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사업 내용이나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사업이 기획 의도와 일정에 맞게 추진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을 합니다. 처음 세운 목적과 목표에 맞춰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지, 예산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를 월 단위, 반기 단위로 점검하고 보고서가 나왔을 때 방향성을 함께 검토하는 일을 해요. 더 나아가서 보고서 안에서 도전과제를 발견하고 사업에 적용하는 일을 합니다.


Q. 실제로 어떤 도전 과제를 해결해 보셨나요?

예를 들면, 우리 한국도 비슷한데 초등학교까지는 부모님께서 아이들의 공부를 지도해 줄 수 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 어렵잖아요. 원뿔 도형의 넓이를 구하라 이런 것처럼요(웃음). 방글라데시에서도 부모님이 아이의 공부를 봐주기 꺼린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내용을 잘 이해해 뒀다가 현지에 출장을 가면 부모 모임에서 대화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아요.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서 사업에 적용해보는 거죠.


또, 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방글라데시의 정책의 빈틈이 보이거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세이브더칠드런이 계속 질문을 하는 거예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만약 정부 차원에서 해결이 어렵다면 우리 사업에 반영할 수 있을지 파악하는 역할을 했어요.



아동보호 프로그램 평가를 위해 라즈바리 지역구 행정 부국장과의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Q. 이 사업을 진행하시면서 아동보호 분야에 대해 많이 배우셨을 것 같아요.

2년 전쯤 국내 아동보호 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해외에서 아동보호 사업을 진행하면서 제가 갖고 있던 질문과 국내의 어려움이 다르지 않더라고요. 가장 크게 공감했던 것은 숫자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동 학대에 대한 신고가 더 많이 들어오는 것은 그만큼 인식 개선이 됐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동보호 시설에서는 보호해야 할 아동들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또 이것을 업무의 성과로 보는 것이 윤리적으로 맞는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는데, 여러 맥락에서 방글라데시와 한국이 비슷했습니다.


Q. 비영리 기관이 사업의 임팩트를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네요. 사업에서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하나요?

방글라데시의 경우, 2015년에 통합지원사업을 시작하면서 변화 값을 측정하기 위해 학대신고 현황을 조사했어요. 나중에 사업 결과와 비교할 수 있는 기준값을 측정한거에요. 이후, 2018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신고 건수가 증가했지만, 종료 보고에서는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아동보호 사업의 특이한 사이클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요. 아이들이 안전을 위협받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핫라인(직통 전화)이나, 아동권리위원회, 세이브더칠드런 직원과의 접점처럼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을 늘려갑니다. 인식 개선을 통해 아동학대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 신고 건수가 증가할 수 있고 이를 긍정적인 신호라고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업에서는 각각의 신고들이 얼마나 잘 처리됐는지 질적인 평가도 중요해요. 사업의 주요 지표 중 하나는 아동의 사례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포함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아동이 처음 피해 신고를 한 뒤에 사건을 처리하는 정부 부처나 경찰 혹은 시설에서 얼마나 아동 친화적인 관점으로 잘 처리 했는지를 평가하는 툴을 활용합니다. 이런 점들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했죠.



현지 모니터링 출장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정상영 매니저.


Q. 평소 현지에서 오는 보고서를 자주 보실 것 같은데 그 안에서 실마리를 발견하는 게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네 맞아요. 예를 들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동권리 교육을 했다고 하면 중요한 결과인 것 같은데 알맹이가 좀 부실하잖아요. 그런 경우 출장과 연계를 시켜서 실제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을 잘 알고 있는지 알아봤어요. 예를 들어, 아동보호 메커니즘을 강화했다는 결과는 실제로 아이들이 신고 체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인터뷰를 통해 검증하는 거죠. 


사실 사업에서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저 스스로도 궁금했어요. ‘보고서상에는 인식개선이 됐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그럴까, 내가 직접 얘기를 해보면 다르지 않을까’ 의문을 품었죠. 그래서 출장을 가면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의 인식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만약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함께 보완하고 개선점을 찾아갔습니다.


Q. 현지에 방문해 점검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방글라데시로 출장을 갔을 때 어떠셨나요?

사진이나 보고서로만 봤을 때도 심각한 환경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잘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막상 홍등가 시설을 가보니 기억에 남는 잔상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다울랏디아 홍등가는 어른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통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도로 옆으로 오물과 쓰레기가 쌓여 있어요. 홍등가에 들어섰다는 걸 냄새로 알 수 있었죠. 


또 다른 지역인 파리드푸르 홍등가는 도심에 자리잡고 있어요. 복도식 아파트 같은 낮은 건물에 한 사람이 2~3평 정도의 집에서 성 노동을 하며 살고 있어요. 거기서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도 있어서 충격을 받았었죠. 사업의 주요 지표 중 하나가 수인성 질병에 얼마나 자주 걸리는지 확인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실제 상하수도 시설을 보니 이해가 됐어요. 우리의 사업이 꼭 필요한 활동이었다는 점을 느끼고 잘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캠페인 대사로 다울랏디아 세이프홈을 방문한 모델 장윤주와 세이프홈 아동


Q. 현지에서 만난 사람 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세이프홈 아이들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오랜 기간 지원하기도 했고, 아동 개개인에게 각별한 보살핌을 제공했으니까요. 사업 결과를 말씀드릴 때 ‘역량 강화’ 라는 부분을 풀어 말하면 '삶의 풍파를 이길 힘이 길러졌는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심리 치료를 비롯해 다양한 지원을 받았지만 사회적 차별에 대한 상처가 남아있어요.  한 번은 아이들의 역량이 얼마나 키워졌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에 리더십도 있고 성격이 가장 밝았던 아동이 그동안 겪은 어려움을 울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가슴이 먹먹했어요.


세이프홈을 졸업한 아동들은 주기적으로 모임을 할 만큼 유대가 굉장히 깊거든요. 세이프홈을 정신적인 고향처럼 생각하는 거죠. 사람이 회복력을 갖기 위해서는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이 필요하잖아요. 세이프홈이 그런 소속감을 채워주었던 것 같아요. 




▲ 세이프홈 졸업 후 응급 의료진이 되어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근무하는 사디야(가명)의 사진


Q. 어른으로 성장해 잘 지내고 있는 아동을 보면 보람이 느껴질 것 같아요.

네, 영상에 소개된 친구들 외에도 기억나는 이름이 몇 명 있어요. 우티야(가명)라는 친구는 세이프홈을 졸업하고 멘토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사디야(가명)는 응급 의료진으로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서 일하고 있고요.


사업의 정량적인 지표도 중요하죠. 영유아 사망률이 줄어들고, 소득이 얼마나 증가했는가 같은 것도 저희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이지만 그게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성과라고 하기엔 오히려 작다고 느껴져요.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세이프홈 아동을 지원했을 당시, 총 41명이 있었거든요. 그중 38명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어머니의 직업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모습과 인생의 롤모델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세이프홈의 진가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동 한 명 한 명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그 동력을 세이브더칠드런의 프로그램에서 얻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자랑스럽죠. 제가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것도 감사하고요.


아동 권리 주간을 맞이해 인식 개선을 위한 거리 행진을 하는 사람들


Q. 사업을 담당하면서 전에는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차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부모 직업, 출신으로 차별받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인지 생각한 계기가 됐어요. 세이프홈의 운영을 맡은 현지 직원과 회의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이 직원들은 홍등가 출신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너도 ‘그런 부류니까’ 이 아동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근거 없는 비난과 차별을 받는 거죠. 그런 와중에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식 변화를 만들어낸 직원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죠. 한편 같이 일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비난을 받는데, 당사자인 아동들은 얼마나 큰 차별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한 사업을 오래 맡기도 했고 현지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능력있고 열정적인 분들이 많았어요. 출장을 가서 여러 정부의 각료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같이 홍등가 아동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며 일하시는 분들이었어요. 세이브더칠드런 덕분에 지역사회에서 아동을 보호하는 정책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제공했다고 얘기할 때 굉장히 뿌듯했죠. 이 문제가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거침없이 의견을 제시하고 발 벗고 나서는 분들을 보면서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아니었으면 안 됐겠다 느꼈어요. 이런 점을 많은 분께 알리고 싶습니다.



👉 세이브더칠드런의 직원이 된 세이프홈 졸업생 락슈미 인터뷰 보러가기 (클릭)

👉 14년 간의 지원 내용과 결과를 기록한 영상 후기 보러가기 (클릭)


  신지은(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사업 담당자의 진심이 담긴 인터뷰를 재밌게 읽으셨나요?
끝까지 읽어주신 바로 그 마음으로 아이들의 삶이 조금씩 바뀌어왔어요.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는 세상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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