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당신이 미처 몰랐던, 10분의 이야기를 만드는 1년

2021.11.17

10분은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 잠깐 숨을 돌리거나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때로는 10분 속에 1년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아동권리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최선의 삶>을 연출한 반예림 청소년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를 짜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완성하는 시간이 대략 1년 정도 걸렸다고 하는데요. 학업과 병행해서 작품을 만드느라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도 있지만, 아마 다른 작품의 감독들도 애쓴 마음의 시간을 합치면 1년이 꽉 차지 않을까 싶습니다. 


10분 남짓한 영상에는 다 드러나지 않은 영화 뒷편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아동권리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최선의 삶>의 반예림 감독과 최우수상을 수상한 <토마토의 정원>의 박형남 감독에게 각각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최선의 삶>의 애니메이션은 어떤 도구로 그렸는지, <토마토의 정원>에서 토마토와 아이들은 어떤 관계인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반예림 청소년 감독이 친구들(김서진, 조아혜)과 함께 만든 영화 <최선의 삶>


어떻게 아동권리영화제 공모전에 참여하게 되셨나요?

반예림   <최선의 삶>은 (김)서진이랑 (조)아혜랑 같이 졸업작품으로 만든 영화인데요. 아동권리영화제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영화제 취지와 잘 맞는 것 같아서 출품하게 됐어요. 예상치 못했는데 너무 큰 상을 받아서 같이 만든 친구들이랑 다 놀라면서 엄청 좋아했어요.


최선의 삶이 어떤 작품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예림   주인공이 엄마의 장례식으로 향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인데요. 우리는 누구나 후회스럽고 원망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럼에도 그 속에서 항상 더 나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최선의 삶>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거예요?

예림   진솔한 내용이 관객에게 와닿을 거라고 생각해서 저를 포함한 팀원 3명의 개인적인 기억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캐릭터도 팀원들의 어린시절을 조합해서 만들었어요. 자전적인 이야기다 보니까 감정적으로 내용을 풀어나가기도 하고 객관적으로 스토리를 보면서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살 수 있는 이야기인지 살펴봤던 것 같아요. 자신이 원망했던 과거를 용서하고 현재를 살아가려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건데 그게 결국 저희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어요.


<최선의 삶>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과정


세 명이 함께 만든 영화인가 봐요.

예림   네. 고등학교 때 와서 만난 친구들인데요. 같은 반 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됐어요. 저랑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애니메이션 그림을 맡았고, 다른 한 명은 배경 디자인을 맡아 작업했어요. 촬영은 제가 했고, 편집은 다 같이 했어요. 줄거리를 쓰는 것도 같이했고요. 시나리오부터 전체 완성까지 1년 정도 걸렸어요.


배우는 어떻게 섭외했나요?

예림   배우는 친구 동생이에요. 아역배우 하고 싶어하는 친구여서 그런지 되게 열심히 참여해 줬어요. 친구 동생이고,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추운 겨울에 촬영하면서 잘 안 나왔을 때 다시 찍자는 말을 하기가 좀 미안했어요. 그래도 잘 따라와 줘서 더 고마웠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처음에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실사로 바뀌는 부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림   일단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실사 영상이 주는 특유의 솔직하고 더 실제 같은 느낌이 느껴졌으면 해서 교차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주인공이 혼자 남겨졌을 때 엄마를 계속해서 떠나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혼자가 되었을 때 느끼는 외로움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최선의 삶>의 한 장면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셨나요? 

예림   저는 주인공이 이사하는 영화 처음 부분이 좋았어요. 배경 디자인에 좀 더 공을 기울였거든요. 복도식 아파트라든가, 어질러져 있고 정돈되지 않은 방을 보면서 주인공의 삶에 이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영상 촬영할 때는 아역배우한테 조금 더 전체적인 감정선을 담아서 외롭고 힘든 느낌을 담아내도록 연기해달라고 했어요. 


흑백으로 표현된 장면들이 외롭고 힘든 주인공의 마음을 더 잘 담아내는 것 같았어요.

예림   드로잉 온 페이퍼(Drawing on Paper) 기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는데요. 컴퓨터로 작업하는 게 아니라 종이에 한 장 한 장 그리는 방식이거든요. 색깔을 넣으면 작업이 더 힘들어지니까 흑백을 선택하기도 했지만(웃음). 좀 어두운 배경을 보여주기에 흑백의 느낌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연필도 쓰고, 콩테나 파스텔도 부분부분 사용했어요. 


청소년의 시선으로 본 아동권리영화제가 궁금해요.

예림   아동권리영화제에서 상을 받게 되면서 왜 저희가 상을 받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아동권리 관점에서 제 영상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됐어요. 우리 모두 다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고 그때의 기억과 경험이 모여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를 대할 때 좀 더 신중하게,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영화제에서 다시 일깨워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선의 삶>의 촬영 장면이 담긴 카메라


<최선의 삶>의 주인공을 아동권리관점에서 바라본다면요?

예림   아무래도 엄마가 아이를 혼자 키우는 집안이다 보니까 엄마가 경제적으로나 생활에서 힘든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 자신의 스트레스나 분노를 아이한테 표출했던 게 아이를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 계획인가요?

예림   네. 영상은 글이나 한 장의 그림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때의 공기라든가, 인물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가 많아서 저는 영상으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좋더라고요. 계속 영상 쪽으로 진학할 계획이에요. 20대에는 그때 제가 겪게 되는 문제나 기억에 대한 진솔한 깨달음이나 메시지에 관한 영상을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박형남 감독이 만든 영화 <토마토의 정원>


<토마토의 정원>은 어떤 영화인가요?

박형남   소원의 풀이라고 불리는 토마토 꽃 앞에서 소원을 비는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결국 토마토는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라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영화 마지막 부분에 ‘토마토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토마토가 아니냐’라는 메시지처럼, 어른들이 제시하는 성적이라든가 성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는데 토마토가 어디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아이들과 토마토를 엮어서 풀어내려고 했어요. 


촬영하면서 어떤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셨나요?

박형남   촬영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할 때 좀 더 조심해야 하는 부분들을 신경 썼어요. 윤가은 감독님이 아이들과 함께 영화 촬영하셨을 때 쓰신 촬영 수칙을 참고하기도 하고 지키려고 했죠. 말을 거칠게 하지 않으려고 하고, 흡연자들도 아이들이 있을 때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요. 영화의 완성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다 같이 즐겁게 촬영하고 마음이 다치는 사람이 없게끔 하는 데 목표를 뒀어요. 


<토마토의 정원> 촬영 중인 박형남 감독


배우들이 엄청 학생 연기를 실감 나게 하더라고요.

박형남   실제로 중학생 역할을 중학생 나이의 배우들이 했는데요. 주입식으로 ‘이렇게 이렇게 연기해’가 아니라 성인처럼 동등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려고 했어요. 배우들이 요즘에는 이런 말 잘 안 쓴다고 얘기해줘서 대사를 조금씩 수정하기도 하고, 별명도 이름에 탱을 붙여서 ‘지탱’ ‘선탱’ 이렇게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저희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청소년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수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청소년 배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청소년들이랑 작업하는 게 어렵지는 않으셨어요?

박형남   아이들이 저희 때랑은 또 다르고, 계속해서 변해가니까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동·청소년 관련 학과를 다니는 친구한테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아까 말씀드렸던 윤가은 감독님 영화나 메이킹 필름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처음이라서 쉽진 않았지만 아이들과 촬영하면서 되게 재미있었어요. 게임하면서 친해지고 이야기하면서 영화의 흐름을 같이 이해하고 공유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아이들이기 때문에 표현해낼 수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마토의 정원>의 주인공 네 명


영화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옥상 공사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공사 소리가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상징인가요?

박형남   네. 영화에도 나오는데요. 소원이라는 친구가 자살한 이후에 어른들이 소원이의 죽음을 무마시키고 흔적을 없애려고 해요. 그래서 4층이었던 건물에 옥상 정원을 만들기 위해 한 층을 더 높이는 공사를 해요. 올라간 건물은 어른들의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요? 토마토가 건물 공사 때문에 햇빛을 못 받게 되면서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어른들의 사정으로 잘 자라나지 못하는 건 아닐지 의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에 소원이가 심어놓은 토마토 말고도 아이들이 토마토를 먹는 장면도 자주 나오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박형남   마지막에 보면 토마토를 먹고 남은 부분을 화단에 던지잖아요. 어떤 토마토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토마토 씨앗을 던지고, 그렇게 던져놓은 토마토 씨앗이 자라서 언젠가 토마토로 자라날 거라는 상징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토마토의 정원>의 한 장면


영화감독으로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점점 더 많아진다면 어떤 점에서 좋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박형남   일단 영화나 문화적인 저변의 다양성 확보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영화가 흥행과 상업적인 부분을 따라가기 위해 다양성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더 다양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15세 미만도 관람 가능한, 단지 유아를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닌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늘어난다면 청소년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면서 긍정적인 점들이 커질 것 같고, 청소년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 청소년 감독도 계속해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화 (커뮤니케이션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최선의 삶>, <토마토의 정원>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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