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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감염병 발견에, 필리핀 마을이 먼저 움직입니다.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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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은 폐렴, 홍역 등의 감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 해마다 수백만 명의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홍역, 디프테리아, 소아마비와 같은 감염병은 예방접종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충분히 예방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는 이유는 예방접종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제때, 충분히 닿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백신 가격, 물류 상의 어려움, 복잡한 예방접종 일정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은 여러 위험한 질병으로부터 완전한 예방접종을 받지 못한 채 남아 있습니다. 2024년 기준 UNICEF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400만 명이 넘는 영아가 단 한 차례의 예방접종도 받지 못했다 추정하고 있고, 미접종 아동의 대부분이 중·저소득 국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방접종이 어려운 현실은 필리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필리핀은 7,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배를 타야 하거나, 산길을 넘어야 하는 접근이 어려운 지역(hard-to-reach area) 이 많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퀘존 주 일부 지역 역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산간 지역으로, 보건 정보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감염병이 발생하더라도 정부의 질병 감시망이 제때 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아이의 열이나 발진과 같은 작은 증상들이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못한 채, 마을 안에서 조용히 퍼지다가 뒤늦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은 퀘존 주 4개 자치구에서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 사업(STRIDES)’을 시작했습니다. Strides는 ‘도약’, ‘큰 발걸음(보폭)’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도약’이라는 의미를 담아, 가장 취약한 지역의 보건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이 사업은 병이 퍼진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안에서 감염병을 먼저 발견하고, 정부의 감시 체계와 연결해 아이들이 아프기 전에 막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제, STRIDES 사업을 통해 마을과 아이들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마을 보건 요원들에게 사업을 소개하는 간호사


재빠른 발견이 핵심 🔎🧐 마을 단위 감염병 감시팀 교육과 운영


필리핀 퀘존 주의 작은 해안 마을. 이곳에서는 아이가 열이 나도 병원에 가기까지 몇 시간이 걸립니다. 길이 끊기거나 배가 없으면, 그 몇 시간이 생명을 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감염병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발견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아프기 전에, 신호부터 알아차리자


세이브더칠드런은 필리핀 퀘존 주에서 지역사회가 주도하고,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감염병 예방·대응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STRIDES 사업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 마을이 스스로 감염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바로 알리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를 위해 각 마을에는 감염병 감시팀(BESU)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을을 잘 아는 보건 요원과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아이들의 작은 증상도 놓치지 않고 살펴봅니다. 감염병 감시팀 구성원들이 집집마다 방문해, 감염병이 널리 퍼지기 전에 감염 사례를 발견·보고·대응하는 지역사회 기반 체계를 세웠습니다.


▲ 가정 방문 중인 마을 보건 요원


우미라이 마을에 사는 임산부 레베카(Rebecca) 이야기

제너럴 나카르 지역 우미라이 마을의 외지에 사는 36세 레베카는 두마갓 원주민 출신으로 6번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미라이 마을은 아직도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남아 있는 지역입니다. 공동체 내 다수의 주민들은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 방법으로 약초와 전통 요법을 사용하고 영유아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예방접종 역시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망설이거나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레베카는 최근 홍역과 독감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 곧 이웃집 아이에게까지 질병이 번지는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 병이 더 쉽게 악화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며 그 차이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원주민들은 접종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전통적으로 우리가 해오던 방식이 아니니까요.


예방접종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는 단순한 두려움이나 문화적 배경만은 아닙니다. 아이를 지키고 싶어도, 정작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이 주민들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두마갓 공동체 주민들에게 보건소로 향하는 길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여정이 아닙니다. 울창한 숲을 지나 도보로 하루 가까이 이동해야 하는 험난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편도 이동에만 8시간 이상이 걸리며, 아이를 안거나 업은 채 길을 나서는 가족들에게 그 시간은 더욱 길게 느껴집니다. 예방접종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STRIDES 사업은 레베카와 같은 부모들이 더 이상 거리와 환경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을 포기하지 않고 가장 멀리 떨어진 공동체에도 보건 서비스가 닿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동에게 경구용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보건인력



마을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는 자네트(Janette) 이야기


자네트(Janette)는 지난 5년간 마을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헌신해온 지역 보건 리더입니다. 코로나19 감염병 시기, 자네트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어머니와 아이들 곁을 지켰습니다.


STRIDES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네트는 가정을 직접 방문하며 필수 예방접종 여부를 확인하고, 잘못된 정보로 인해 접종을 망설이는 보호자들을 설득하며, 지역사회 최전선에서 활동했습니다. 최근에는 마을 내에서 수족구병이 확산되면서, 자네트와 같은 보건요원들이 현장에서 감염병 대응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많은 보호자들이 수족구병의 전파 방식과 위험성을 충분히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필요한 교육과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이 갖춰지면서 자네트와 팀은 의심 사례 확인, 보호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상담, 그리고 확산을 막기 위한 생활 수칙 안내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네트는 지역사회 안에서 분명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열이 있거나 기침을 해도 “조금 아픈 것뿐이니 밖에 나가 놀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보호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감염병 감시팀이 가정을 찾아가 이렇게 안내합니다.


아이는 집에서 쉬게 하고, 처방받은 약을 꼭 복용하게 해주세요,

지금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감염될 수 있어요.

- 마을 감염병 감시팀 안내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STRIDES 사업을 통해 강화된 보건 요원들의 현장 역량이 있습니다. 보건 요원들은 아이의 기본적인 증상을 살피는 방법과 예방접종의 종류와 시기에 대해 교육을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족구병을 포함한 염병과 건강 위험에 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역의 기초 보건 역량이 한층 강화되고 있습니다.




태블릿으로, 아이의 생명을 지키다: 📱 디지털 보고시스템 도입 (TIPTALK-ERS)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디지털 전자보고 시스템 팁토커(TIPTALK-ERS)의 도입입니다. 자네트와 감염병 감시팀은 태블릿을 활용해 감염 의심 사례를 즉시 입력하고, 그 정보는 곧바로 보건소로 전달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를 위해 노트북과 태블릿 등 기본 장비를 지원하고, 보건요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빠른 보고는 곧 빠른 대응을 의미합니다. 보건소 인력이 신속하게 사례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전환에 있어 걸림돌은 인터넷 연결 문제인데요.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지역에서는 태블릿 기기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나중에 인터넷이 연결되면 바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데이터 연결이 안되는 지역에서는 위성 인터넷을 활용하거나, 동전 자판기형 공공 와이파이를 활용해 데이터를 전송하기도 합니다.



태블릿을 활용해 데이터 수집하는 마을 보건 요원 자네트


마을의 약속이, 제도가 되도록


또한 마을의 변화가 일회성 노력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방정부와 함께 지속 가능한 감염병 대응 체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역 리더와 보건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여 예방접종 현황, 공동 보건기금 조성에 대해 논의하고, 아이들과 원주민 또한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대화의 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시된 지역의 목소리는 형식적인 의견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제도와 예산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은 아이들이 태어난 곳과 상관없이, 누구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예방과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약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건강한 출발선을 가질 수 있도록, 오늘도 가장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여정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글  박현진(커뮤니케이션부문)   편집 정진실(국제사업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