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더칠드런소식지 152호
[문화로 본 아동권리] 실질적 참여의 권리를 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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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빈터펠트의 동화 『아이들만의 도시*는 독일의 작은 도시 팀페틸에서 어른이 사라진 후에 일어나는 일을 다뤘다. ‘팀퍼틸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야기는 이렇다. 마을의 장난꾸러기 윌리가 고양이 꼬리에 자명종을 다는 바람에 동네가 한바탕 뒤집어지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장난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아무런 예고도 하지 않은 채 도시 전체를 비우고 아이들 곁을 떠나버린다. 어린이들은 늦잠을 잤는데도 누구 하나 자신을 깨우지 않았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잠에서 깨어 어른이 하나도 없는 도시를 둘러본다.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거리에 나가보니 가게는 모조리 닫혀 있다. 아이들만 남은 도시, 팀페틸은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아이들만의 도시
 헨리 빈터펠트   그림 채기수   옮김 김정연   출판사 아롬주니어


이 동화는 어른들이 없으면 얼마나 고생일까 훈계하는 것처럼 아이들끼리 일으킨 소동을 묘사하는데 작품 초반부를 할애한다. 그러나 정작 어린이 독자들이 책에 매료되는 것은 중반부부터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치조직을 건설하고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공동체를 정비한다. 토론을 통해 법과 규칙을 세우고 지혜를 모아 멈추었던 발전기를 돌리는 일까지 성공한다. 팀페틸의 아이들이 훌륭하게 마을을 재건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이 독자는 환호한다. 정지되었던 도시 팀페틸은 아이들의 힘과 노력으로 더욱 건강한 활기를 찾는다.


아동과 청소년이 이 도시의 동료 시민이라고 여기지 않는 어른들이 많다. 어른으로부터 일방적인 보호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동과 청소년은 동등한 구성원이며 독립적으로 존엄하다.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어떤 일은 가능하고 어떤 일은 공상에 불과한지, 어떤 일은 실패하기 마련인지 도전하고 실험하고 좌절하면서 자라나는 능동적 존재이다. 어른에게 특권이 있다면 어린이에게 행해지는 불의에 맞서 싸워줄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의 힘만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어른들의 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새해 들어서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아동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동참여위원회를 만들고 아동친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아동을 위해서’ 어른이 무언가를 해준다는 시혜적 정책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 의견을 결정과정에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 1999년부터 청소년참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2018년 기준으로도 171개의 위원회가 있지만 참여기구에서 활동해본 학생 중의 23.1%만이 자신들이 제안한 정책이 실제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기구들이 전시행정일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동료가 된다는 건 상대방을 신뢰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아동과 청소년이 직접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또 한 번 그들을 보기 좋은 들러리로 세우는 일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의 힘을 믿어준다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사회 구석구석을 활기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팀페틸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린이 문학작품 소개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데이브 에거스   그림 숀 해리스   옮김 김지은   출판사 이마주


어린이가 시민으로서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시민이 가져야 하는 기본 태도와 다른 시민을 대하는 마음가짐, 실천적 활동의 의미를 알기 쉽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페이퍼 컷팅 아트로 이루어진 그림도 아름답다. 



생쥐 나라 고양이 국회

알리스 메리쿠르   그림 마산진    옮김 이세진   출판사 책읽는곰


4년에 한 번씩 투표를 해서 지도자를 뽑는 생쥐 나라의 좌충우돌 선거 과정을 담은 그림책. 1962년 캐나다의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가 했던 실제 연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대의 정치의 의미와 참여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도록 돕는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그림 아롬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