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올해로 제10회를 맞은 아동권리영화제의 막이 내렸습니다. 올해는 세이브더칠드런도 새로운 도전을 한 해였는데요. 아동 관점의 영화를 큐레이션하는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하는 이야기를 발굴해 세상에 전하는 ‘오리지널 필름’ 제작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장애아동, 특히 일반학교의 장애 통합학급의 현실을 전하는 <이세계소년>이 제작됐습니다. 영화 오프라인 상영회가 열리는 날. 뜻깊은 자리에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바로, 영화 제작에 영감을 준 장애 통합학급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입니다. 영화제 담당 동료가 ‘보물 같은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는 말에 냉큼 손을 들고 인터뷰를 다녀왔는데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 느껴지는 선생님과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울고 또 웃었습니다. 깊은 여운이 남은 이야기들을 2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1편은 아동권리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교실의 비하인드 스토리, 2편은 현직 교사의 시선에서 본 통합교육의 중요성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전합니다.
장애 통합학급 '행운의 반'의
담임 교사, 김명희입니다.
김명희 선생님은 올해로 27년차 베테랑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현재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스물다섯 명의 담임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반은 전교에서 알아주는 ‘행운의 반’이라고 하는데요, 매년 장애가 있는 아동을 맡아 통합학급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와 행운? 쉽사리 연결하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김명희 선생님의 교실에선 가능한 일입니다.
“평범한 교사였던 제가 통합교육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됐어요. 저희 둘째 아이가 희귀 난치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로 인한 발달장애가 있고요.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특별한 아이들에 대한 눈을 떴어요. 나머지 인생은 이런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막연히 생각했고,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했어요. 늦은 나이였지만 제 인생에서 정말 공부다운 공부였던 것 같아요. 너무 알고 싶고,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싶다는 내적 동기에서 비롯된 공부였죠”
선생님의 경험은 글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통합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며 마주하는 예쁜 모습이 잊히지 않도록 하나둘 인터넷에 남겨 왔거든요. 올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새별이(가명)와 한 반이 되었고 아이들과의 추억을 기록한 글 덕분에 세이브더칠드런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원래는 자료 수집을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반 년간 가꿔온 교실을 직접 경험한 김성호 감독님과 세이브더칠드런은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고 의견을 모았죠. 그렇게 장애 통합교실이자 ‘행운의 반’ 어린이들의 하루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집니다.
"제가 글을 쓰는 걸 아시는 연구회의 선생님께서 연결해 주셨어요. 새별이 부모님도 우리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라면 앞장서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흔쾌히 동의하셨죠. 다른 부모님께서도 ‘너무 좋다, 의미 있다‘고 동의 해주셨고요. 연락을 받고 일주일 만에 촬영 한지라 미리 준비도 없이 그야말로 그냥 집밥 같은 수업을 그대로 공개했어요.
학기 초에 우리 반 아이들이 ‘선생님은 매해 TV에 나가는 사람인데 우리 반은 왜 안해요?’ 물어봤어요. 제가 21년에 교육 방송에 출연하고, 작년에 찍은 방송사 다큐멘터리가 올해 장애인의 날 특집으로 방송 됐거든요. ‘그건 섭외가 들어와야 되는 거야. 선생님이 우리 반은 행운의 반이라고 했지? 행운의 반이니까 섭외가 들어올 수도 있지’ 하면서 아이들과 꺄르르 웃었어요. 우리 교실을 전 국민에 알리자, 아니 전 세계인에게 알리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그랬는데 딱 이렇게 섭외가 들어온 거예요."
장애 통합학급이 만든
안전한 성장의 울타리
당시의 설렘을 전하는 선생님의 눈빛이 꼭 아이들처럼 반짝 빛났습니다. 올해 선생님의 반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새별이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또래보다 발달 지연이 있어서 학습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동입니다. 문득, 장애아동과의 통합학급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은 없었는지 궁금했습니다.
“3월에 학부모 총회가 있어요. 그때 제가 선포했어요. 우리 반은 ‘신경다양성’ 교실이다. 그리고 나는 새별이가 있기 때문에 이 학급을 맡은 통합교육을 하는 교사다. 그래서 새별이와 우리 반 아이들이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게 나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어요. 이어서 신경다양성 교실을 보여주는 공개 수업을 했어요. 아이들이 25명인데 학부모님은 50명이 오신 거예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까지.
이때다 싶어서 굉장히 힘든 아이를 다 함께 품어주는 내용의 그림책을 읽고, 동영상도 보여주며 독후 활동도 했어요. 그걸 본 학부모님들이 전부 눈물을 흘렸죠. ‘됐다, 목표 완수다’ 싶었어요. 이어서 학부모 총회에서 강조했죠. 장애 학생을 맡는 것, 아이와 함께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선생님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학부모님과 우리 반 학생이 모두 함께 도와줘야 될 수 있는 일이라고요.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만난 건 행운이라고 말했죠.”
김명희 선생님의 교실은 일명 ‘행운의 반’입니다. 아이들의 자기 긍정을 위해 선생님이 지은 별명입니다. 말의 힘은 강하다고 하더니, 어느새 아이들의 입에서 ‘우리 반 너무 좋아, 우리 선생님 너무 좋아, 우리 반은 좋은 일이 많이 생겨!’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여느 교실처럼 아이들끼리 싸우거나 다치는 힘든 일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의연하게 우리는 행운의 반이니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장애인 친구와 함께하는 통합학급이어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습니다.
“아이들은요, 선생님이 가장 소외되고 힘든 아이들 포기하지 않고 데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해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선생님은 나를 버리지 않겠구나, 나를 데리고 가겠구나. 정말 약한 아이들과도 함께 갈 수 있을 때 나머지 아이들이 느끼는 그 안정감, 우리 반이 너무나 안전한 교실이라는 그 느낌. 많은 분께서 그걸 모르세요. 그래서 제가 알리려고 참 많이 노력합니다.”
교실에서 시작되는
배려와 포용의 가능성
선생님이 만든 안전지대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보듬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 모습이 다큐멘터리에 고스란히 담겼죠. 다큐멘터리를 본 선생님의 소감을 물었습니다.
“아이들의 인터뷰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정말 예쁜 모습을 포착해 주셨어요. 아이들에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그동안 했던 말들이 아기들 입에서 나오는데... 전율이 오더라고요. 마지막에 나온 꼬마가 ‘이 친구가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이 친구를 더 많이 들여다보면 장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하고 말하잖아요? 그 목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울림이 되길 바랐어요. 다름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는 그런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죠.”
다큐멘터리에서 눈에 띈 장면이 있습니다. ‘슬픈 마음을 정리하는 곳’이란 이름이 붙여진 교실 한 켠의 작은 인디언 텐트입니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기 힘든 새별이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같았던 그날을 선생님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폐가 있는 아이들은 변화가 큰 새 학기를 힘들어해요. 새별이도 새로운 루틴에 힘들게 적응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비가 와서 식사 후에 늘 하던 ‘나 잡아 봐라’ 놀이를 못하게 됐어요. 자기도 밖에 나가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괴로운 마음을 조절하기 어려우니 텐트럼*이 온 거죠. 어두운 곳을 찾아 컴퓨터 책상 밑으로 들어가더니 한 시간 내내 울다가 그만 코피가 터졌어요. 아이를 꺼내다가 저도 피투성이가 되고, 친구들도 돕다가 물리고 맞는 일이 생겼어요. 결국은 아이들이 보건 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간신히 지혈했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특정 상황에서 경험하는 감정적 폭발
때마침 다음 시간이 새별이가 특수학급에 내려가는 때였어요. 반 아이들과는 바로 이어서 장애이해 교육을 했죠. 그때 아이들이 처음 안 거예요. 이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정서 조절에 어려움이 있어서, 갑자기 막 울거나 괴로워할 때가 있으니 다치지 않게 선생님만 다가가기로 약속했어요. 그리고 이 친구가 자꾸 구석을 찾는 걸 보니 혼자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나중에 한번 우리 교실에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얘기했죠. 새별이 어머니께도 속상하시겠지만 다친 아이들 엄마들에게 사과 전화를 하도록 말씀드렸고요.
그리고 이틀 뒤였어요. 출근길에 아이들이 주차장에서부터 저를 기다리더라고요. ‘이거 보세요! 석원(가명)이가 가져왔어요’해서 가봤더니 작은 텐트를 가져왔어요. 당근에서 찾아서 사왔다면서 손으로 이름까지 써서 붙였더라고요. 아이들 몇 명은 집에서 쿠션을 들고 와서 넣었고요. 그걸 보고 너무 놀라서 아이들이랑 붙들고 막 울었어요. 마침 그날 새별이 어머니가 반 아이들을 위해 수제 쿠키를 만들어 왔는데, 그걸 받은 아이가 새별이에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그럴 수 있어. 우린 다 이해해.’하더라고요.”
'슬픈 마음을 정리하는 곳'은 새별이 말고도 모든 아이들이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작은 창문이 뚫려 있어서 수업에 참여할 수도 있고요. 친구의 힘든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한 공간이 모든 아이들의 자기 돌봄의 공간이 된 것입니다.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낸 아이들이 대견했습니다. 무궁무진한 교육의 가능성을 현장에서 펼쳐나가는 선생님이 마치 슈퍼 우먼처럼 느껴졌어요.
모든 장애 통합교실에서도 이렇게 배려와 사랑이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리지널 필름 <이세계소년>을 본 선생님의 감상을 들어보았습니다.
“영화가 굉장히 묵직한 질문을 던져요.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를 잘 건드려준 거죠. 대처 방안까지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영화가 끝이 나요. 오히려 그런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일으켜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실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탁 던지는 거죠. 그래서 이어지는 다큐까지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에서 우리 반 아이들의 너무나 밝은 모습이 펼쳐지잖아요? 영화에서 느꼈던 그 묵직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반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미래 교육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영화는 좋은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온 관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따뜻한 시선’ 이라고 답했습니다. 장애아동을 조금만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봐주면 좋겠다는 말. 그 말을 꼭 삶에서 실천해보자고 다짐해보았습니다. 인터뷰 다음편에서는 통합교육의 새로운 방향성으로 제시되는 신경다양성 교실과 우리나라 교육과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어서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려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셨다고요? 아동권리영화제의 오리지널 필름과 다큐멘터리를 무료로 연장 상영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글 신지은 (커뮤니케이션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