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017년 8월 25일, 수만 명의 로힝야족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낯선 땅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8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여전히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Cox’s Bazar) 난민캠프에서 불확실한 내일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캠프에는 100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이 살고 있고, 그 절반 이상은 아동과 청소년입니다.
좁은 공간, 부족한 보건·위생 시설, 단절된 교육, 아동 대상 폭력과 조혼, 성착취 위험까지—복합적 위기 속에서 아이들의 삶은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
로힝야 난민 아동·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
세이브더칠드런은 2022년,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살아가고 있는 로힝야 난민 아동·청소년 및 그 가족 347명을 대상으로 심층 연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인지고래 5호는 그 보고서의 국문 번역본으로, 로힝야 난민의 경험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화재 이후 자신의 거처에 있는 6세 하프사나(Hafsana)
생존을 넘어 마주한 장기적 지원의 현실
난민들이 처음 캠프에 도착했을 때의 최우선 과제는 잠잘 곳, 식량, 안전과 같은 생존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필요는 교육, 생계, 의료 등 장기적인 요소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잠잘 곳이나 먹을 것도 부족했고 치안마저 불안했죠.
낯선 장소에서 사람들끼리 너무 빽빽하게 모여 있다 보니 아이들을 잃어버릴 만큼 혼란스러웠어요.
화장실이나 식수 같은 기본 시설마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정말 힘든 나날이었어요.
그래도 몇 개월 지나면서 조금씩 상황이 나아졌고, 한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다시 악화되고 있어요.
캠프 내부에서 일부 범죄 집단이 나타나 주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지금 우리의 주요 문제는 예전과 같아요. 의료 서비스는 여전히 부족하고, 어린아이들은 교육받을 기회가 한정되어 있어요.
심지어 교육의 질마저 떨어져 양질의 교육을 받기 쉽지 않죠.
— 재스민(Jasmin), 로힝야 난민의 아동의 어머니
조사에 참여한 난민의 61%는 현재의 캠프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초기에는 잠잘 곳, 먹을 것, 위생시설처럼 당장 생존을 위한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는 더 깊어졌습니다. 지금 난민들이 가장 절실히 호소하는 것은 안전과 보호의 부재,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부족, 그리고 제한된 생계 수단과 같은 장기적인 지원입니다.
▲ 친구들과 공부 중인 14세 로한(Rohan)
로힝야 난민 아동·청소년들이 바라는 교육
로힝야 아동·청소년들은 무엇보다 양질의 교육에 대한 기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이후로 부모님은 저를 집 밖에 못 나가게 하셨어요.
공식적인 학교도 없고, 아이들은 집에서 놀듯이 학교에서도 그냥 시간만 보내요.
전에는 CBO 에서 운영하던 학교에서 공부 했었는데, 지금은 다 무너지고 문을 닫았어요.
로힝야 교사들이 미얀마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CBO 학교 같은 곳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거기서는 영어, 미얀마어, 수학을 로힝야어로 풀어 설명해서 아주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방글라데시 교사들이 저희가 알아듣지 못하는 뱅골어로 수업을 하고 있어요.
— 타슬리마(Taslima), 15세 로힝야 난민 소녀
하지만 여전히 교육의 질은 낮아 많은 아동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보호자와 아동의 57%는 “처음 캠프에 도착했을 때보다 교육 수준이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배움의 기회 자체가 부족하고, 역량 있는 교사도 턱없이 모자랍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던 교육 프로그램마저 중단되면서,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더욱 좁아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과거보다 더 위험한 곳이 되어버린 캠프
경찰 보안 인력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주 살해되고 납치당해요.
그래서 경찰이 있어도 범죄 조직은 없었던 과거만큼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경찰들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나쁜 사람들을 체포하고 뇌물을 받고 그냥 풀어주는 행동 같은 거요.
정부가 그런 행동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관련 집단을 근절해서 캠프를 정화해주길 바라요.
—주나이다(Zunaida), 로힝야 난민인 십대 소녀
시간이 흐르면서 캠프는 오히려 더 위험해졌습니다. 범죄 집단과 무장 단체의 활동, 경찰 부패로 인해 난민들은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동 노동, 조혼, 인신매매 등 아동 보호와 관련한 문제는 특히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 보건 시설에 있는 23세 야스민(Yasmin)
의료 서비스의 한계
예전에는 좋은 병원은 없었지만, 의사들이 길가에 앉아 약을 나눠주곤 했어요.
지금은 더 큰 병원들이 생겼지만 치료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고, 효과 없는 약만 줘요.캠프에서 부모님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지역 사설 병원에 가기에는 돈이 없어서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NGO 병원은 땡볕 아래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하고, 다양한 치료제가 구비되어 있지도 않아요.
—19세, 로힝야 난민 아동의 어머니
난민들이 체감하는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은 여전히 낮습니다. 장시간 대기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치료나 약을 얻기 어렵고, 비용 부담 때문에 사설 병원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성질환, 정신 건강, 영양 문제는 더욱 심각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18 아동클럽 선거 현장
로힝야 난민들의 의사 결정 권한, 목소리가 닿지 않는 현실
가족 간의 의사결정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정부와 더 큰 지역사회, NGO들과 관련해서는 우리 가족은 전혀 참여할 수 없어요.
저희가 느끼는 어려움이나 문제를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심지어 부모님 조차 의견을 낼 수 없는데, 저 같은 어린 소녀가 어떻게 참여할 수 있겠어요?
우리처럼 어린 소녀들이 공동회의에 가면 NGO 직원들은 우리를 그냥 돌려보내요.
— 누르(Noor), 15세 로힝야 난민 소녀
난민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은 정부나 국제기구, NGO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에 거의 참여하지 못합니다. 설사 의견을 내더라도 실제로 반영된다고 느끼지 못해 다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의욕을 잃고 있습니다.
▲ 21세 루크샤나(Rukhshana) 가족과 이웃 줄레카(Juleka)
끝나지 않은 과제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이 캠프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미얀마에서 겪었던 공포와 제약을 여기서도 지속적으로 겪고 있어요.
매일 겨우 버티면서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끔찍한 삶을 더는 견딜 힘이 없습니다.
— 압두(Abdu), 로힝야 난민의 한 아버지
로힝야 난민이 캠프에서 겪는 삶은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울 만큼 열악하며,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모든 난민들은 현재의 상황과 아동·청소년들의 미래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고향 미얀마로 돌아가 권리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국제사회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현실에 큰 좌절을 느끼고 있습니다.
교육·보건·보호 등 아동과 청소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한 세대 전체가 희생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분적인 개선은 있었지만, 상황을 바꾸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질 높은 교육, 경제적 자립의 기회, 안전한 환경과 인권 보장입니다.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방글라데시, 미얀마 정부는 반드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한 세대의 희생이 또 다른 세대의 희망을 빼앗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행동이 절실합니다.
▲ 아동클럽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세이브더칠드런의 대응
세이브더칠드런은 2017년 이전부터 콕스바자르에서 난민과 지역사회를 지원해왔습니다. 아동보호, 교육, 보건, 영양, 식수위생, 주거, 식량, 현금지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지금까지 아동 34만 명을 포함해 62만여 명에게 도움을 전했습니다. 2025년에도 6월 기준 아동 약 15만 명을 포함한 39만 명에게 인도적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아동친화공간에서 아동보호 역할극을 하고 있는 아이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또한 방글라데시 사무소와 협력해 2017년 이후 꾸준히 난민 지원을 이어왔습니다. 지금까지 누적 사업비는 약 47억 원*에 달하며, 직접 수혜자는 약 6만 6천명에 이릅니다.
2025-2026년에는 로힝야 난민과 수용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보호·평화 기반 구축 사업을 수행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아동보호, 젠더 기반 폭력 인식개선 및 권리 강화, 생계 지원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난민과 지역사회의 아동들이 보다 안전하고 “밝은”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 인도적지원 공동기금 및 유연기금(Humanitarian Fund, HF) 포함
이번 글은 인도적지원 보고서 시리즈 <인지고래> 5호 '여전히 어둠 속에 살고 있어요'의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 [인지고래 5호] “여전히 어둠 속에 살고 있어요“ : 방글라데시에서의 지난 5년을 되돌아보는 로힝야 난민 아동·청소년들의 이야기 👈보러가기
<인지고래>는 ‘인(人)도적 지(支)원’을 통해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의 보고서 시리즈입니다. 전 세계 아동의 목소리를 담은 글로벌 인도주의 보고서를 국문으로 번역해 발간하고 있으며, 이번 제5호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5개 호를 발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인지고래와 세이브더칠드런의 인도적지원 활동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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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고야(인도적지원·기후위기대응센터) 편집 임경은(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