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더칠드런소식지 146호
[기획특집 Ⅱ] 가정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삶의 질도 ‘뚝’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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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실직이나 빈곤, 가정학대 등 다양한 어려움으로 원가정 안에서 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위탁가정이나 흔히 보육원이라고 불리는 양육시설에서 크는 ‘가정 밖’ 아이들입니다. 2017년에만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4,121명이었고, 이들 중 93%가 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 맡겨졌습니다. 올해 삶의 질 조사에서는 이 아이들에 주목했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특별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힌 아이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아이들. 이 아이들의 삶을 파악한 국내 최초의 연구입니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 박영의  사진 김흥구



시설보호 아동과 복합 위기 가정 아동 삶의 질 낮아

이번 한국 아동의 삶의 질 연구에서는 양육시설과 위탁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는 전국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초3, 초5, 중1 전체 733명의 삶의 질을 추가 조사했습니다. 나아가 다양한 가족 형태 (양부모 비(非)빈곤, 양부모 빈곤, 한부모·조손·기타 비(非)빈곤, 한부모·조손·기타 빈곤, 양육시설, 가정위탁 등 6가지 유형)에 따른 아동의 삶의 질을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시설보호 아동과 한부모·조손·기타 빈곤 가정(복합 위기) 아동은 대부분 영역에서 삶의 질이 평균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시설보호 아동은 관용, 공감, 사회적 능력 등 바람직한 인성과 관계 영역에서 낮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위탁가정 아동은 물질적 상황 영역이,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은 물질적 상황, 건강, 주관적 행복감 영역이 특히 낮았습니다.

반면 시설, 위탁가정 등 가정 밖에서 보호받더라도, 보호 기간이 늘어날수록 삶의 질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시설보호 아동의 건강과 주관적 행복감, 물질적 상황 영역이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는 빈곤, 가정해체, 학대 등 원가정에서의 부정적 경험이 가정 밖에서 보호받으며 완화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가정 밖 보호 아동과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 등 지원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난 아이들을 위해 연구진은 △보육사 추가 배치 등 가정 밖 보호 체계 돌봄의 질 향상 △위탁가정에 대한 현실적 지원책 마련 △빈곤, 가정해체 등 위기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가정 밖 아동 발생 예방 △부모의 취업, 주거 지원 등 가정 밖 보호 아동의 원가정 복귀를 위한 지원책 마련 등을 제시했습니다. 지원대책을 포함해 ‘가정 밖’ 아동에 대한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연구를 진행한 김선숙 교수(한국교통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사진)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8월 30일 아동 삶의 질 심포지엄 직후 진행됐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특별히 가정 밖 아동의 삶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유엔아동권리협약 20조에 ‘당사국은 가정환경을 박탈당한 아동에 대해 특별한 보호조치를 제공하고 적절한 대체 가족양육이나 기관 배정이 이뤄지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어요. 가정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국가가 이 아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가정 밖에서 보호되고 있는 아이들의 삶과 행복에는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어요. 이들에 대한 연구가 그동안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가정 밖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을 포함해 다양한 가정 형태에 따른 아이들의 삶의 질을 보고, 궁극적으로 구체적인 지원책을 제시하기 위해 이번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시설보호 아이들의 삶의 질이 가장 낮게 나왔습니다. 빈곤과 가정 해체 등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삶의 질도 낮았고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일 거 같은데요. 

단순히 보호 시설에 살아서 삶의 질이 낮다고 결론 내릴 게 아니라, 이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해요. 가정이 해체되고, 보호시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빈곤, 학대 등 여러 역경을 경험해요. 이런 환경을 경험한 시설 아동은 전반적인 영역에서 낮은 발달 수준을 보이고, 행복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가정 밖 보호의 결과라기보다 아동의 누적된 발달 과정에서의 문제라고 봐야 하는 거죠. ‘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있다’라고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아이들이 가정환경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상황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해요. 


관용, 공감, 사회적 능력 등 바람직한 인성 영역에서 시설보호 아동이 낮은 수준을 보인 것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건가요?

발달 과정에서 돌봄의 부재가 누적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여요. 사회적 능력은 책을 읽는 것과 같이 노력으로 생기기 어려워요.

자라는 환경에서 저절로 체득되죠. 가정이 위기를 겪고 있다면 그런 기회가 부족했거나 아예 없었을 가능성이 커요. 시설에서 보호를 받게 되면 물리적인 환경이 개선되겠죠. 하지만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똑같이 사랑해줄 사람, 편안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맺는 애착 관계 같은 것은 보호시설에서 쉽게 채울 수 없는 부분이에요. 

보호시설에서 건강 같은 영역의 간극은 금방 메워져요. 하지만 오랫동안 누적된 사회적 능력 같은 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특히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학대 경험이 있어요. 전문 치료사가 있기도 하지만, 가정에서와 같이 긴밀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렵거든요. 나이가 들고 보호 체계 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는데 여전히 뛰어넘지 못하는 간극이 있는 거죠. 그래서 더욱 심리적, 사회적 영역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시설보호 아이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보육사 추가 배치 등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요.

돌봄의 질을 높인다는 건 가정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걸 의미해요. 물리적인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도요. 사회적 능력은 이건 나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고 상호 작용을 해주는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해요. 학교에 다녀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양육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거죠.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이런 경험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어요. 보육사를 추가 배치해서 한 명의 아이에게 쏟을 관심과 시간이 늘어나면 집중적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대안 중 하나로 보육사 추가 배치를 제시했습니다.


위탁가정 아동은 다른 영역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 물질적 상황에서 매우 낮은 수치를 보였는데요.

위탁가정 아동을 유형 별로 나눠보면, 친인척이 아닌 사람이 보호하는 일반위탁이 7.9%에 불과해요. 대부분은 조부모나 친인척이 보호하는 경우죠. 위탁가정에 오기 전에 빈곤이나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이 많고 조부모나 친인척 가정도 빈곤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환경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위탁가정에 경제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고요. 


양부모 비빈곤 가정 아동의 삶이 질이 가장 높게 나왔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만 놓고 보면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에서 아동이 잘 자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정상가족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어요. 사회자본 이론이라고 있어요. 아동을 돌볼 수 있는 성인, 즉 사회자본이 일반적으로 양부모 가정이 풍족할 수밖에 없죠. 한부모는 경제활동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니까요. 부모만큼 강도 높은 돌봄을 해줄 수 있는 대체 인력을 찾기도 어렵고요.

다만, 이 문제를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릴 것이냐는 다른 문제예요. 취약한 가정,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서 아동을 키우는 것이 그 가정만의 책임일까요? 오히려 사회자본이 부족한 가정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해야 하는 거죠. 복합위기 가정에게 대체양육 서비스, 경제적 지원, 취업 지원 등 다각적인 지원을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빈곤가정에서도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한다면 아이들이 가정환경을 박탈당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번 연구는 가정 밖 보호 체계 아동에 대한 연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때문에 이번 연구만으로 시설보호 아동은 ‘이 영역이 열악하다’, 혹은 ‘부족하다’라고 섣불리 말하기 어려워요. 훨씬 더 구체적으로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정책 제안을 하려면 자료의 축적이 필요해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예요.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도 마찬가지이고요. 또 아동 전반이 아니라 시설 아동과 같이 지원이 필요한 아동에 대한 연구도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