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더칠드런 소식지 157호
경로를 이탈하여 재탐색합니다
20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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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면서 가도 처음 가는 길은 자주 헷갈립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렇습니다.
처음이라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다 보면 전혀 다른 곳에 서 있는 나와 아이를 발견하곤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에 학대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도담도담 부모 프로그램(이하 도담도담)’을 개발했습니다.
원래 가고 싶은 목적지는 어디였는지,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합니다. ‘도담도담’에 참여해 다시 길을 찾았다는 송 선생님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윤주은 상담원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송 선생님
도담도담에서 이름을 정하는 시간이 있는데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그립고 가슴에 남아서 ‘송 선생님’으로 했어요. 갑작스러운 임신과 출산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는 저도 한때 선생님으로 불렸거든요.
윤주은 상담원(사회복지사)
세이브더칠드런 산하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에 다시 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상담· 교육·모니터링하는 사례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요.
도담도담의 시작
부부갈등이 있었어요. 어느 날은 누가 신고했는지 경찰이 왔어요. 아이와는 문제가 없었는데도 얼마 안 있다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거부했어요. 당황스럽기도 했고, 누가 와서 제 얘기를 하는 게 불쾌하고 싫었죠. 물론 지금은 단순히 부부싸움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폭력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요. 아동보호전문기관 선생님이 꾸준히 연락해주시고, 또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점차 마음을 열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아이가 사춘기가 왔어요. 아이와 싸우는 일이 반복되니까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딱 도담도담 얘기를 하셔서 배우게 됐어요.
가정의 상황과 필요를 파악해서 도담도담을 같이 해보자고 권해드려요. 처음에는 안 하신다고 하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어떤 분은 도담도담을 하고 난 후에도 아이에게 잘 못 해주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엄두가 안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완벽한 부모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고 말씀드리면서 설득하죠. 도담도담을 진행할 때는 가정 상황을 고려해서 1~2주에 한 번씩 방문해요. 한 번 할 때마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아이에게 상처주는 말을 원하는 말로 바꿔보는 말습관카드
무조건 꾹 참는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제가 부모만 참아야 하냐고 그랬는데…. 도담도담을 하면서 제 생각과 아이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여유가 생겼어요.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내지 않고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배웠거든요. 이제는 화가 나는 순간에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음날 차분하게 아이에게 얘기해요. 예전이었으면 이렇게 못 했죠. 새로운 길을 찾은 것 같아요. 제 마음이 편해지니까 아이들도 편안해진 게 보여요. 아이 말투도 부드럽게 바뀐 거 있죠.
가정방문해서 보호자가 요새는 아이를 때리지 않는지, 아이 앞에서 욕하지 않는지 점검하는 걸로는 부족합니다. ‘이런 행동은 아동복지법을 위반하는 거라서 하면 안 된다’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보호자가 꾹 참는 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거든요. 도담도담은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에요.
공감하고 이해하기
저는 할머니 손에 컸는데요. 할머니는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픈 저를 단 한 번도 짐처럼 대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엄마한테는 많이 맞고 나쁜 말도 많이 들었거든요. 할머니가 저한테 따뜻하게 대해 주신 것처럼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지,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한테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어느새 제 모습이 엄마 모습과 닮아있더라고요. 그걸 알았을 때 무척 놀라고 속상했어요. 전에는 우리 아이한테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죠.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살면서 느껴본 따뜻함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건 차이가 있어요. 자신이 느낀 따뜻함을 이야기하면서 많이 울기도 하시고, 받은 따뜻함을 아이에게도 주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그 외에도 아이의 발달 특성을 배우고, 체벌을 받을 때 아이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본다거나 갈등상황을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도 있습니다.

도담도담 부모 프로그램 책자

생각이 바뀌는 시간
언어폭력도 폭력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제가 항상 말해온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부드럽게 말하려고 해요. 예전 같았으면 ‘OO야, 엄마가 이거 정리하라고 몇 번 말했잖아!’라고 얘기했을 텐데, 이제는 ‘아직 여기가 정리 안 됐네’라고 말해요. 아이들도 제가 말할 때 더 잘 받아들이고요. 하지만 여전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도 교육을 다 받고 나니 내가 뭔가 하나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담도담은 아이와 양육자뿐만 아니라 상담원도 함께 성장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담도담 과정 중에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얘기하는 시간이 있는데요. 모든 분들이 다 아이를 키울 때 행복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전에는 아동학대 가정, 아이를 때린 사람이라는 좁은 시야로 상황을 평가하고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도담도담을 하면서 이분들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아이에게 관심이 많은 양육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호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가정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데도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육아의 길에 함께합니다
사람들이 종종 ‘니가 낳았으니까 니가 책임져야지’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양육이 어려워도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도담도담을 하면서 제 얘기를 누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선생님이 제가 애쓰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런 응원이 처음이어서 무척 감동을 받았어요. 요즘은 아이에게 편한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도담도담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육아를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하잖아요. 아이를 키울 때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담도담으로 도울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한 가정, 한 아이의 변화를 볼 때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하는 윤주은 상담원
커뮤니케이션부 한국화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아이를 존중하는 양육법 알아보기 할머니 할아버지의 양육을 도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