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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기고문] 세계시민으로 사는 법…방글라데시에서의 깨달음
사람들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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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오준 이사장을 비롯한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회가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모자보건 사업의 성과를 점검했습니다. 5박 7일간 가이반다 지역 자체사업장, 랑푸르 지역 KOICA 사업장, 수도 다카를 방문하는 숨가쁜 일정이었습니다. 가이반다 사업장 방문 내용을 담은 아시아N 기고문을 전해드립니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전 유엔 대사, 장애인권리협약 전 의장




 세이브더칠드런 후원으로 세워진 보건소를 방문해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2개월 전, 방글라데시 랑푸르 지역의 세이브더칠드런 사업장을 방문했습니다. 랑푸르 주는 방글라데시 북쪽 끝에 위치한 인도 접경 지역으로, 세이브더칠드런이 모자보건 사업을 펼치고 있는 곳이죠.


브라마푸트라 강이 굽이치는 이곳에는 퇴적물로 생긴 섬 지형을 뜻하는 ‘쫄’이 많습니다. 섬이 형성되고 10년쯤 지나 안정되면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죠. 땅이 비옥하고 정부 소유여서 빈곤층이 이주해 정착하지만, 행정기관이나 병원은 없습니다.


▲ 이 지역의 유일한 교통수단, 말이 끄는 달구지


파시아 쫄은 15년 전쯤 형성되어 1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이주해 살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정부로서는 이주민들을 정식으로 인정해 행정기관을 설치하거나 인프라 시설을 만들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민들을 무시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입니다. 도로도 없어서 자동차 대신에 조랑말이 끄는 달구지가 교통수단이죠. 주민들은 병원 진료가 필요할 정도로 아프면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육지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임신과 출산을 병원에 갈 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유산이나 영아 사망률이 높습니다. 사실, 방글라데시 전체가 아시아에서 영아 사망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이곳에 약 1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안전한 출산이 가능하도록 산부인과 보건소를 수립, 운영하고 있습니다.  


▲  강 유역의 ‘쫄’로 가는


곳에서 만난 임산부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의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18세에 세 번째 임신 중이었죠. 저는 통역을 통해 그들에게 한국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산파의 손에 의존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곳에도 좋은 병원이 세워질 것이니, 그때까지 보건소를 잘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매년 이런 개발도상국 현장을 다니며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역시 불과 한 세대 만에 도움받는 나라에서 돕는 나라로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몇 년 전 어떤 잡지와의 인터뷰 후 기사를 보니 “타인을 위한 삶”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타인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자가 발간 전에 제목을 논의했다면 그런 제목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나’와 ‘우리’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의 문제, 즉 정체성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좁게 인식하면 가족이나 친척 이외에는 모두 ‘남’일 수 있고, 더 확대해 지역이나 학벌을 중심으로 우리를 인식할 수도 있죠. 

한편,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우리’와 ‘그들’의 경계선은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인류가 만든 모든 조직 단위 중 가장 강한 강제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국가 중심의 정체성은 비민주 국가에서 더욱 뚜렷하지만, 선진국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는 청년들에게 자신을 한국인일 뿐 아니라 인류의 한 사람, 즉 세계시민으로 인식하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죄수가 감옥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요청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이미 최고 형량을 살고 있으므로 규정을 어기더라도 더 큰 불이익은 없죠. 자발적으로 분리수거에 동참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신의 의도로 창조되었든, 진화를 거쳐 우연히 생겨났든 한 가지는 분명하죠.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 본능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개체로서 생존하기 위해 먹고, 종족으로 생존하기 위해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갑니. 누구든지 생존 본능이 있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남은 삶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장기수도 인류의 생존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류 전체가 계속 생존할 수 있도록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우리 후손이 멸종의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는 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한 장기수는 이튿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기로 했습니다.



글 오준(이사장)       정리 박현진(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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