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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x MBC 아시아 프레스투어] ③ 현실판 ‘워터월드’ 방글라데시, 아이들의 꿈까지 잠긴다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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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8월 방글라데시는 수십 년 만에 닥친 최악의 폭우로 11개 지역에서 아동 200만여 명을 포함해 49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이미 폭염으로 학교가 일시적으로 폐쇄되는 등 더 심각해지고 더 빈번한 기상이변의 피해를 겪고 있었죠. 이러한 기후변화는 아동의 건강이나 영양, 교육, 가정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보호에서도 취약성을 높입니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가라앉는 물의 나라인 방글라데시에 MBC 기후환경팀의 김민욱 기자와 뉴스영상팀의 김준형, 전인제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모든 것이 부서졌던 현장의 이야기를 김민욱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방글라데시 랄모니르핫에 사는 14살 마수마 악타르.



방글라데시 북부 랄모니르핫에 사는 마수마의 꿈은 의사다. 만으로 14살, 방글라데시 학제로는 고등학교 9학년, 한국으로 치면 중학생이다. 성적도 제법 좋은 편이라고 한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겠다고 말한다. 그런 마수마의 꿈을 방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가난도 교우 관계도 아니다. 홍수다.


학교는 집에서 2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다. 마수마는 학교까지 걸어간다. 한국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5~60년대 괴나리봇짐 매고 10리(4킬로미터)를 걸어서 학교에 갔다고 했으니, 그에 비하면 절반 정도다. 그런데 험난하기로 따지면 마수마의 학교 가는 길이 한 수 위일 것이다. 특히 우기에 말이다.



[우기에는 교복 두 벌 챙기는 아이들]


랄모니르핫은 해마다 6~10월 우기가 되면 큰 홍수가 난다. 말 그대로 ‘해마다’ 난다. 랄모니르핫은 히말라야산맥을 굽이쳐 나온 강줄기들이 만나기 시작하는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 야트막한 언덕조차 보이지 않는 평원과 같은 곳이다. 이 넓은 들녘이 우기가 되면 전부 다 물에 잠긴다. 옷이 젖지 않고는 도저히 학교에 다다를 수가 없다. 마수마는 우기에는 교복 한 벌은 입고, 한 벌은 가방에 넣어간다. 학교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는다. 마수마의 친구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



 마수마의 등굣길 풍경, 우기에는 이 넓은 평원이 모두 물에 잠긴다.



홍수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발생 일수도 늘고, 홍수 때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큰 홍수가 몇 차례 반복되고 나더니 마수마 집 앞에는 커다란 연못도 생겨났다. 우기가 아니더라도 마수마는 아빠나 동생이 모는 보트를 타지 않고는 학교에 갈 수 없게 됐다. 그래도 보트 타고 옷 갈아입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해마다 우기가 되면 방글라데시 학교 수천 곳이 임시 휴교에 들어간다. 학교도 잠겨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꿈 빼앗는 홍수]


지난 6월 말에서 7월 초, 랄모니르핫을 포함한 방글라데시 북부에 홍수가 났을 때, 이 홍수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수만 2백만 명이 넘었다. 4만 명은 집을 떠나 대피해야만 했다. 한국의 홍수와는 ‘체급’이 다르다. 그리고 마수마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느끼는 것처럼 홍수는 점점 더 파괴적이 돼 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강 상류의 인도 댐들이 수문을 열어서 홍수가 난다고 하지만 그 댐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가 잦아지는 것은 분명 기후변화 때문이다. 마수마 꿈의 가장 큰 장애물은 어쩌면 기후변화일 것이다.



▲ 지난 8월 말 방글라데시 동남부의 홍수로 집이 사라져버린 9살 모하메드 무사.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남동쪽으로 8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쿠밀리아라는 도시가 있다. 9살 모하메드는 쿠밀리아 외곽 부르부리야라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 8월 말, 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어느 밤, 모하메드는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들과 허겁지겁 집을 나서야 했다. 마을 옆 둑이 터져나가 흙탕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물이 차올랐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와 할아버지 집으로 피했다. 물이 빠진 뒤 돌아와 보니 집 바닥만 남고 기둥과 벽, 가재도구는 모두 부서졌다. 아니 대부분 사라졌다.



[어른들도 생전 본 적 없는 홍수]


이런 상황에선 학교에서 수업을 듣겠다는 것이 어쩌면 사치다. 무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8월 말 방글라데시 동남부 쿠밀리아와 페니에서는 홍수로 74명이 사망했다. 450만 명이 홍수의 영향을 받았다. 더 문제는 홍수가 난지 한 달이 넘도록 아무것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끊어진 둑길에 어설픈 징검다리가 놓인 게 다였다. 임시 거처도 너무 부족했다. 모하메드 옆집에 살던 누루 미야 할아버지는 집이 화장실만 남기고 그냥 사라지다시피 했다. 집터 옆에 나뭇가지에 파란 비닐을 얹어서 움막을 만들었는데, 그나마 반은 염소 차지였다. 부르부리야 마을이 다시 일상을 회복하려면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 세 아들 부부와 함께 큰 집에서 살던 누루 미야 씨의 집은 화장실 건물만 남기고 사라졌다. 집터 옆에 비닐로 움막을 짓고 염소들과 지내고 있다.



9살 아이에게만 놀라운 홍수가 아니었다. 누루 미야 할아버지도 생전 처음 겪는 홍수였다. 마을 어르신들도 생전 본 적 없는 홍수가 이번 여름 부르부리야 마을을 덮친 것이다. 비교적 바다와 가까운 방글라데시 동남부는 비가 쏟아지고 강물이 넘쳐 흘려도 금방 바다로 빠져나가는 지역이었다. 방글라데시 북부나 중부에 비해서 홍수 피해가 크지 않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워터월드’ 현실판 된 방글라데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일부 지역의 경우 하루 150밀리미터 이상의 극한 강우가 내릴 확률이 최대 4배나 늘었다. 저지대에 위치한 국가여서 홍수가 잦긴 했지만 그래도 1970년대까지는 국토의 30% 정도가 홍수 지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60% 이상으로 늘었다. 아마 지금은 더 넓은 지역이 홍수를 겪는 지역이 됐을 것이다. 국토의 80%가 해안과 하천의 저지대인 방글라데시는 이제 우기가 되면 어디든 홍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현실판 ‘워터월드’이다.



▲ 방글라데시 서남부 갠지스 삼각주의 칼라바기 마을. 해수면 상승과 열대성 폭풍으로 인한 침수가 반복되며 마을이 물에 잠겼다.


홍수가 다가 아니다. 방글라데시 서남부 세계에서 가장 큰 삼각주인 갠지스 삼각주 한 가운데에 칼라바기라는 마을이 있다. 바다와는 수십 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는 마을. 원래는 강줄기가 굽이쳐 흐르며 반도처럼 튀어나온 형태의 마을이었다. 그런데 마을 폭이 점점 줄더니 마을 중간은 물 아래에 잠겨버렸고, 마을 일부가 섬처럼 떨어져 나가버렸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또 그 때문에 열대성 폭풍으로 인한 침수가 심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해수면 상승과 침수로 섬이 돼버린 마을]


수도 다카에서 차를 타고 5시간 또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칼라바기. 위성사진으로 본 것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섬이 된 마을 끝부분은 사람 하나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이 놓여있고, 그 작은 길을 따라 집들이 물에 떠 있다. 집을 받치는 기둥은 하루 중 절반은 물에 잠겨있다. 집 안에 들어가 봤더니 성인 두 명이 간신히 몸을 누일 공간이다. 화장실은 공동인데, 물에 기둥을 세우고 다리를 놓고 가운데가 뚫린 형태로 판자를 놓고 파란색 천을 두른 게 전부다.



▲ 칼라바기 마을의 과거와 현재 위성사진. 마을 중간이 침수되며 섬처럼 변하기까지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섬이 되면서 찻길도 전기도 끊긴 마을에는 아직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원래 자기 소유의 농지도 있었던 사람도 많다. 하지만 어디로 이주하고 싶어도 돈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점점 가라앉는 작은 섬이 된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미 마을을 떠난 사람도 많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인근의 도시로 모여든다. 공장에 취업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수는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기후변화로 원래 살던 곳을 떠난 사람들을 ‘기후 이주민’이라고 부른다. 다카에는 이 기후 이주민들로 슬럼가까지 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방글라데시에서 2050년까지 1,990만명의 기후 이주민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글라데시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다.


▲ 방글라데시 서남부 공업도시 몽글라에서 보트로 강을 건너는 출근길 풍경. 이들 중 상당수는 침수된 해안과 하천 저지대 마을을 벗어난 ‘기후 이주민’들이다.




[‘기후 불평등’ 지켜만 볼 것인가?]


기후변화 대응과 적응에도 돈이 필요하다. 부유한 국가일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방글라데시의 고통은 그래서 더욱 마음 아프다. ‘기후 불평등’, 즉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말의 상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한국의 산업 시스템은 더 이상 방글라데시와 같은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의 노동력이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주 노동자들은 온갖 차별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들의 가족과 이웃들이 기후위기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한 번쯤은 그 위협이 얼마나 큰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 떠나서 그냥 나와 같은 시기 이 지구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수마와 모하메드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사회 그리고 국제 사회가 한시바삐 기후변화와 그로 말미암은 위협을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늦어질수록 기후변화로 고통받고 꿈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몽글라 인근 칠라 바자의 주민들이 진흙을 퍼날라 둑을 쌓고 있다. 해수면 상승 등으로 강폭이 넓어지면서 마을의 상당부분이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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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민욱

2008년 MBC에 입사한 방송기자. 2020년부터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를 취재하고 있는 환경전문기자이다. 2022년 한국방송대상, ABU(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Prizes 2023, 2024년 올해의 기후변화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편집자의 말 = 방글라데시는 지리적 위치와 지형적 특성으로 기후 재난에 취약한 국가입니다. 세계기후위험지수(Global Climate Risk Index)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기후위기 영향을 많이 받은 국가 중 7번째입니다. 연평균 572.8명이 사망하고, 연간 평균 기후재해 피해액이 1,860만 달러에 달합니다.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하수 내 해수가 침투하면서 식수를 안전하게 이용하기 어려운 지역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해수가 지하수로 침투해 토양의 염도를 높아지면 농업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고, 식수와 생활 및 농업용수 역시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주민의 생활도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죠. 


세이브더칠드런은 방글라데시 남서부 사트키라 지역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물 관련 취약성을 감소시키고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한 기후변화적응 탄소 저감형 식수시설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식수 시설을 설치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운영 및 관리하도록 지원합니다. 또한 물을 주로 활용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여성 이용자 그룹을 조성해 목소리를 대변하고 지역사회 내 인식 전환에 힘쓸 예정입니다. 또한 기후위기 속에서도 방글라데시 북서부의 랑푸르 주 전략형 모자보건 시스템 강화 사업을 통해 양질의 보건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더욱 많은 임산부와 아동이 보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글.정리 나상민(커뮤니케이션부문) 협조 김지혜, 김나래(국제사업부문), 세이브더칠드런 방글라데시 Jahanara Hridita, Ashrafee Af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