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든 전쟁은 아동에 대한 전쟁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창립자 애글렌타인 젭이 한 말입니다. 실제로 분쟁 상황에서 아동은 여러가지 보호 리스크를 마주합니다. 국제사회는 아동에 대한 6가지 중대 범죄(6 Grave Violations Against Children)로 정의하고 규탄하고 있는데요, 살해 및 상해, 징집, 납치, 젠더기반폭력(GBV), 학교시설 공격, 원조 거부가 해당됩니다.
2024년 6월 유엔이 발간한 <아동과 분쟁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분쟁에 의한 중대 범죄가 전년 대비 21% 상승하여, 분쟁 지역에 거주하는 아동에 대한 보호가 시급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국제적인 인도적지원 전문 기관으로서 특히 아동보호 분야에서 선도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6가지 중대 범죄 중 ‘젠더기반폭력(Gender Based Violence)’에 대응한 사업을 통해 에티오피아 아동의 삶에 찾아온 변화 이야기를 나눕니다.
분쟁과 기후위기로 흩어진
에티오피아 아이들의 유년기
▲ 에티오피아 실향민 정착촌에서 닭을 돌보고 있는 아이다
비가 전혀 오지 않아요.
먹을만한 풀이 자라지 않아서 동물들이 죽어가요.
올해로 스물 한 살이 된 아이다(가명)는 불과 15세가 되던 해에 결혼했습니다. 2018년에 발생한 분쟁으로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지역에 거주하던 아이다의 가족은 실향민이 됐고, 기후위기로 식량 가격이 급증해 구호 물품에 의지해 살아가던 때였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탓에 아이다는 학교에 갈 나이에 원치 않는 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수개월 후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아이다는 인근 도시로 도망쳤고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나, 아이다가 겪은 고통은 지금도 수많은 여자 아이들에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오랜 분쟁과 기후위기로 대규모 실향 문제가 발생한 국가입니다. 2024년 6월 기준 약 450만 명이 집을 떠나야만 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아동입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의 위기가 심각합니다. 가족들을 따라 집을 떠나온 여자 아이들은 젠더기반폭력, 조혼, 여성할례 등 유해한 전통적 관행(Harmful Tradition Practices)에 노출될 위험이 증가합니다.
▲ 오랜 가뭄으로 가축이 죽어가는 메마른 에티오피아 남동부 지역의 초원
전체 실향민의 약 26%가 거주하는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및 중부 지역 내에는 빈곤, 불안정한 정착 여건, 낮은 공공 서비스 접근성 등으로 인한 아동 폭력, 방임, 학대, 심리적 트라우마, 아동 노동, 조혼, 여성 할례 등 다양한 아동 보호 리스크가 존재하는데요.
세이브더칠드런은 해당 지역에서 실향 아동이 처한 보호 리스크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해, 2022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유니세프와 함께 <분쟁 피해 및 실향 아동 대상 회복력 강화, 평화 증진, 보호 사업>을 수행해왔습니다. 지난 2년 6개월 간 오로미아 지역의 메다웰라부(Meda Welabu) 및 중부 지역 도요게나(Doyo Gena) 에서 아동보호 사업을 수행하여, 실향 아동 및 최취약계층 아동을 포함해 총 87,632명(여아 34,670명, 남아 18,953명, 여성 18,122명, 남성 15,887명)을 지원하였습니다.
가정에서 시작하는 아동보호
▲ 극심한 가뭄으로 버려진 에티오피아의 실향민 정착촌.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더 나은 환경을 찾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도요게나 지역에 거주하는 아스나케(67세, 가명)씨는 분쟁 실향민으로 생활 기반을 잃어 생계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또한 다섯 딸을 양육하는 조혼 위험이 높은 가정이었습니다. 아스나케씨처럼 경제적으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가정에서는 조혼과 같은 부정적인 대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여자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보다 가정 내 생계 안정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세이브더칠드런은 사례 관리를 기반으로 개별 가정이 처한 상황을 파악해 적합한 생계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현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스나케씨도 현금 지원을 받아 당나귀와 수레를 구입하고 운송업을 시작했습니다. 수익이 나자 양봉을 시작해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되면서 딸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례 관리를 진행하면서 평소 의사소통이 어렵던 딸 베텔은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을 수 있었고, 심리사회적 지원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과 사회성이 향상됐습니다. 아스나케씨도 긍정적으로 아이 키우기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역사회 내 널리 퍼져있던 유해한 양육 방식에 대해 인지하게 됐습니다.
▲ 세이브더칠드런의 현금 지원으로 구입한 당나귀와 아스나케씨
지원을 받기 전, 저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이
전통적인 자녀 양육법을 사용했고 체벌도 자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교육 이후에는 부정적인 방법을 쓰지 않다 보니
아이들과의 관계도 크게 개선됐습니다.
- 아스나케(가명) -
이처럼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정의 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한 아동 보호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최취약 계층 2,084가구를 대상으로 “보호를 위한 현금 지원(Cash for Protection)”을 제공하였는데요. 이를 통해 5,940명의 아동이 가정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환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모 및 양육자를 대상으로 유해한 전통적 관행(HTP)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양육법을 확산하여 가정에서부터 아동 보호에 나설 수 있도록 교육했습니다.
아동의 목소리가 불러온 변화
▲ 교내 아동보호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선생님과 청소년 리더
케아리암(14세, 가명)은 도요게나 지역의 여자아이들이 처한 문제에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입니다. 이 지역에는 조혼, 여성 할례, 아동 노동처럼 전통적인 관습이 널리 퍼져 있어서 케아리암의 친구들을 위험에 빠트리곤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케아리암과 친구들은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을 받아 학교에 젠더 클럽을 조직하고 운영하면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케아리암과 클럽 멤버들은 지역사회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해한 관습의 위험성을 알리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지원받은 확성기, 마이크, 교육 자료 등을 활용해 여자 어린이들을 보호해야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 교내 아동 보호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케아리암의 모습
젠더 클럽을 통해 좋은 리더십과 아동 권리를 지키는 법을 배웠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중요한 대화를 시작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제가 성장해서 고등교육을 마치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 케아리암(가명)-
▲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으로 개설된 아동친화적공간(Child-Friedly Spaces)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아이들
이처럼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 보호의 주요 거점인 학교를 중심으로 젠더, 아동 권리, 여아 및 여성 청소년 특화 교내 클럽을 운영하여 아동이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더 나아가 피해 발생 시 신고 및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 등을 교육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아 14,749명이 인식 개선 활동에 참여하였고,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4개 학교에 아동친화공간을 조성하고 운영하여, 아동이 안전한 놀이 및 학습 공간에서 심리사회적 지원과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였습니다.
특별히, 아동 보호 리스크에 노출된 아동 426명을 식별하여 사례 관리 지원도 진행하였는데요. 개별 사례 관리를 통해 생계 지원, 심리사회적 지원, 위생 용품 및 교보재 지원 등을 진행하였으며, 지속적인 후속조치를 통해 아동의 회복력 증진을 지원하였습니다.
지역사회가 함께한 아동보호 역량 강화
▲ 지역사회에서 조직한 아동보호위원회의 위원들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이 외에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아동 보호 시스템 강화 활동을 진행하였는데요. 지역사회 아동보호위원회를 조직하여, 주민들이 아동 보호 리스크를 식별하고, 적절한 기관에 신고 및 연계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였고, 이를 통해 조혼 101건, 여성할례 83건을 조기 발견하고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역량이 강화된 지역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모금하고 운영하는 아동보호단체를 설립하고, 조혼과 여성 할례를 금지하는 지역사회 조례(Community Bylaws)를 제정하는 등 지역사회 내 아동 보호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도요게나 지역 내 18개 사업 마을(Kebele) 중 9개 마을이 여성할례 및 조혼 근절 마을로 선정되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 (왼쪽) 적절한 지원을 받은 폭력 및 학대 피해자 비율(기초선 17% → 종료선 39.3%)
(오른쪽) 지역 내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아동 학대 및 젠더 기반 폭력 신고 채널이 있다고 답한 비율(기초선 15.9% → 종료선 99.2%)
사업을 통해 아동 보호 수준 개선, 지역사회 회복력 강화, 지속가능한 보호 시스템 구축 등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하였지만, 계속되는 분쟁 및 기후 위기로 인해 신규 실향민이 유입되고 있어 사업 지역의 상황은 여전히 긴급합니다. 지역사회의 자원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으며, 국제사회 인도적지원계획(HRP) 재원 조달률이 약 21%에 불과한 현실(UN OCHA HRP)로, 추가적 자원 확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후원자님들과 함께 아동이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아동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글 정도란(국제사업부문) 정리 신지은(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