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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 ② 신경다양성 교실, 저출생 시대의 교육 해법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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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제10회를 맞은 아동권리영화제의 막이 내렸습니다. 올해는 세이브더칠드런도 새로운 도전을 한 해였는데요. 아동 관점의 영화를 큐레이션하는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하는 이야기를 발굴해 세상에 전하는 ‘오리지널 필름’ 제작에 나섰고, 장애아동과 통합교육의 현실을 다룬 <이세계소년>과, 특별 다큐멘터리를 선보였습니다.


영화 제작에 영감을 준 장애 통합학급 담임교사, 김명희 선생님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영화제 참여의 비하인드를 다룬 인터뷰 1편에 이어, 현직 교사의 시선으로 본 통합교육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초등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 ① 아동권리영화제 장애 통합교실 다큐멘터리 비하인드 인터뷰






신경다양성 교실,

저출생 시대의 교육 해법


‘모든 교실은 신경다양성 교실이다 초등학교에서 누구보다 가까이 아이들을 만나는 김명희 선생님의 말입니다. 마치 과학 분야에서 들어볼 법한 단어와 교실이라는 이질적인 만나니 낯섦에서 오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선생님께 신경다양성의 뜻을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장애, 비장애’, ‘정상, 비정상’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문화 속에 살아왔어요. 그런데 생물학적 다양성이나 문화적 다양성을 보고 이건 정상이고 저건 비정상이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처럼 인간이 가진 신경학적인 차이를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어요. 개개인의 뇌신경학적인 차이를 스펙트럼으로 존중하고, 장애가 아닌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보자는 개념이에요.


 김명희 선생님의 저서 <신경다양성 교실>



김명희 선생님은 저서 <신경다양성 교실>을 통해 학교에서도 이 개념을 받아들이고 수업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이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에 신경다양성을 가진 학생들이 늘어난데 따른 현실의 외침에 가까웠습니다.


일단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동의 비율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예전에는 자폐성 장애라고 불렸지만 ‘스펙트럼’의 개념이 소개되면서 우영우처럼 고기능 자폐에 해당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지적 장애를 동반하지 않은 자폐 인구도 엄청나게 많아졌죠. 미국은 38명당 1명 꼴이고, 우리나라는 100명 당 1명 정도예요.


기존의 지적장애 아동 외에도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지능은 정상 범위인데 읽고 쓰기가 안 되거나 난독증을 보이는 아이들이죠. 또한, 경계선 지능의 아이들은 대부분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ADD(주의력 결핍증)를 동반으로 갖고 있어요. 위기 가정 아이들, 정서 행동에 어려움이 있는 불안장애와 우울장애까지. 우리나라 어느 학교나 어느 학급에 가도 이런 아이들이 전체의 20%를 차지해요. 이제는 이런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교육을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김명희 선생님이 장애 통합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2024년 기준, 특수교육 대상자는 11만 5천여 명. 10년 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 느린 학습자 아동(경계선 지능인)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지금 학교에는 통계 안팎으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 많아진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받았던 산업화 시대에 맞는 대규모 공장식 교육이 적용이 안돼요. 지식 전달도 이제 무슨 의미가 있나요? AI가 대체를 할 텐데. 그러면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비인지적 영역이에요. 서로 공감하고 관계를 잘 맺도록 돕는 것이 미래에 꼭 필요한 핵심 역량이죠. 학교는 이런 비인지적인 영역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책에서도 평균의 함정이 언급됐습니다. 1940년대 미국에서 전투기 사고가 급증했고 조사를 통해 조종석의 문제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조종사들의 신체 지수를 평균을 내 디자인했지만, 막상 ‘평균 신체’에 딱 맞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교육도 ‘평균’을 만드는데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아야 되는게 공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위해서, 그 아이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공교육의 방향이 아닌 거죠. 모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려면 교사가 평균적인 교재와 수업으로 가르쳐선 안돼요. 못 따라오는 아이가 있고, 앞서나가는 아이가 있다면 다양성을 고려한 ‘보편적 학습 설계’가 필요해요. 다양한 학습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옵션을 준비한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 참고하면 좋을 자료

📍 Save 뉴스레터 10월 호 - 한국 특수교육 현황과 장애아동의 기회를 가질 권리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협력 체계가 필요한 교실


 다 함께 체육 수업에 참여하는 장애 통합교실 아이들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는다는 공교육의 철학은, 마지막 한 아이까지 구한다는 세이브더칠드런의 비전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혼자서 교실을 책임져야 하는 교사가 보편적 학습 설계까지 고려할 수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김명희 선생님도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이들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다양성은 더 커지고 있어요. 옛날에는 경계선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흔히 쓰일 만큼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그에 따라 부모님의 요구도 커지고 있고요. 그렇다면 학교도 준비가 필요해요. 그런데,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아무리 사명감이 높은 교사라도 통합교육을 혼자 할 수 없어요. 우리 반 새별이(특수교육 대상 아동)도 도와주시는 보조 선생님(특수교육실무사)이 계세요. 보조 선생님이 없으면 아이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요.


장애 학생이 없는 교실이 오히려 더 힘든 경우도 많아요.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은 오로지 담임 교사의 몫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10년간 통합교실을 맡으면서 특수교사와 협력하고 행정 지원도 받을 수 있었어요. 장애아동 덕분에 사각지대 아동까지 혜택을 받아요. 담임교사 한 명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챙겨 주시니까요. 그래서 교사도 많아져야 해요. 1교실 2교사제가 어느 학교에서든 보편화되어야 모든 아이들을 커버할 수 있어요.


선생님의 교실이 ‘행운의 반’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학교 시스템과 교사, 학부모, 학생간의 돈독한 협력 체계의 구축. 그 혜택을 받는 것은 모든 아이들입니다. 일찍이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름의 길을 찾아온 덕분입니다. 이런 선생님의 철학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맺는 관계성에도 영향을 줍니다.


비슷한 발달 단계에 있는 또래들끼리는 배려를 잘 못해요. 맨날 싸움질이죠. 니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 그런데 우리 반에는 보호해야 할 친구가 있잖아요? 새별이는 청각적으로 예민해서 큰 소리가 나면 귀를 손으로 막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새별이 힘들어, 우리 조용히 하자’고 말해요. 그때 교사의 역할은 친구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강화해주는 거예요. ‘너의 이런 마음이 너무 예뻐.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 정말 좋은 일을 하는구나, 너의 행동은 세상을 바꿀 거야.’ 이렇게 내적 동기까지 건드려주면 아이들이 변해요.


 김성호 감독과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진행하는 김명희 선생님 반 아이들



그렇다고 무작정 배려를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아는 아이가 남도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하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베테랑 선생님도 실수를 통해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도 했어요. 무작정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왜 쟤만 예뻐해요’ 하더라고요. 부끄럽고 미안했어요. 그 아이도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거였죠. 진정한 통합교육이 되려면 타인에 대한 이해 전에 나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해요. ‘사회 정서 학습’의 기본이거든요? 그 뒤로는 3월부터 정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과의 관계를 맺어요. 학부모님께도 아이가 뭘 잘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대화해요. 우리 선생님이 나를, 자녀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믿음이 생기면 그때부터 잘 굴러가는 거예요. 선생님이 하는 모든 것에 신뢰를 갖고 장애 학생을 이끄는 모습을 똑같이 모방하죠.



각자의 자리에서 

인식을 바꾸는 노력


일반 교사로 근무하다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한 선생님도 몸으로 부딪혀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비교사들은 대학에서 ‘특수교육학 개론’ 2학점만을 듣고 통합교육 현장에 투입됩니다. UN 장애인권리협약뿐만 아니라 한국의 특수교육법에서 통합교육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열악했습니다.


제가 93학번인데요, 정말 라떼는 그런 과목조차 없었어요. 학교에서는 이미 통합교육을 하고 있었지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들어간 거예요. 지금은 한 과목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제가 저질 체력인데, 지난 3년간 교생실습을 담당해서 총 6개 학기마다 교생 선생님들을 만난 이유가 있어요. 통합학급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임용이 된 뒤에 바로 통합교육을 하게 되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섭겠나 싶어서요. 교육청과 교육부 통해서 예비교사 대상 연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반 아이들한테 최선을 다해야 하니 남은 시간에만 갈 수 있지만요.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고 있는 김명희 선생님 반 아이들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인식개선을 위해 교사 연수, 연구회 활동, 저서 집필, 사례 공유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에게서 삶의 소명을 발견하고 헌신하는 사람의 향기가 났습니다. 선생님은 학교 밖에서의 인식개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2년간의 학령기는 인생에서 정말 짧은 시간이에요. 장애아동도 졸업 후에는 80년을 함께 채워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해요. 저희 아이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내가 교육분야에서 노력하면 세상이 바뀔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이제 고1이 됐고 곧 성인이 되는데 정말 두려워요. 유승연 작가님의 <아들이 사는 세계>라는 책을 보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일반인들의 인식 개선이 정말 필요한데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학교 교육이나 학부모, 교사 연수 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믿어요. 우리 반 아이들 25명이 나비효과를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아직 아기들인데 집에 쫄래쫄래 가서 학교에서 경험한 통합교육 얘기를 전해요. 부모님 세대는 통합교육이 거의 안됐다보니 내 아이가 그런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걸 보면 긍정적으로 반응하시곤 하세요. 우리반 부모님들도 새별이랑 같은 반 돼서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고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식을 바꾸면 회사를 비롯한 삶의 영역까지 퍼져 나간다고 생각하면 조그마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가치 있고 행복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일찌감치 도착한 새별이가 선생님께 달려와 안겼습니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친구들이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새별이는 바로 몸을 돌려 친구들에게로 뛰어가 서로 얼싸안고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통합학급의 아이들과 학부모님이 다 함께 영화관에 가는 것은 ‘어메이징’한 일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마음이 싸르르 울렸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해 이야기를 하는 김명희 선생님



집으로 가는 길에 오늘의 대화를 곱씹으며 ‘나는 신경다양성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남들과 다른 나의 유별남에 힘들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어쩌면 우리 모두가 평균이 되기 위해, 정상인으로 보이기 위해 정형화된 틀에 맞추고자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됐어요. 김명희 선생님의 다양성에 대한 인사이트로 인터뷰 기사를 마쳐봅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발전하게 된 것은 신경 다양성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평균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해요. 같은 현상도 신경다양인들은 창의적이고 낯설게 볼 수 있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 인류는 진화했어요. 특히 이공계에는 자폐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다수 종사하고 있어요. 평균만 가지고는 인류는 절대 발전하지 않아요. 우리 사회가 훨씬 더 풍요롭게 발전하려면 다름을 인정하는게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신지은(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