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몽골말 죽이기'는 쟝샤오쉐엔 감독의 작품으로, 현대 몽골의 변화와 도전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영화 속 사이나는 한때 최고의 경마 기수로, 생계를 위해 전통 기마 공연에 출연합니다. 아버지의 빚과 도시에 사는 아들의 학비를 위해 일을 늘리고 가축을 팔지만, 오랜 세월 함께한 흰말과 농장은 포기하지 않죠. 사이나의 친구인 하싸 역시 뛰어난 경마 기수였습니다. 그도 생계를 위해 전통 기마 공연에 참여하지만, 도시로의 이주를 결심하고 말과 양을 모두 팔아버립니다.
▲ 제8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독립 섹션 '베니스 데이즈'로 알려진 '조나르테 델리 아우토리 Giornate degli Autori(작가의 날들)' 초청작이자
지난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초청작이었던 '몽골말 죽이기'의 한 장면
🎬 영화 정보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소개] 몽골말 죽이기(To Kill a Mongolian Horse, 2024)
이 영화는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몽골이 직면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예년보다 늦게 찾아온 겨울은 유난히 혹독합니다. 가뭄 끝에 찾아온 혹한은 주인공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몽골은 사막화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30년 전 국토의 40%였던 사막 지역이 현재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또한 '조드'라 불리는 기상이변의 빈도도 크게 늘어, 과거 10년에 한 번씩 발생했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1~2년마다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몽골의 전통적인 유목 생활 방식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생계가 어려워진 유목민들은 결국 도시로 이주하게 되고, 이는 몽골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아동의 삶이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는 몽골에 MBC 사회팀(기후환경팀 파견)의 이지은 기자와 뉴스영상팀의 장영근, 전인제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첫눈과 함께 시작된 몽골의 겨울, 그 현장의 이야기를 이지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울란바토르에서 수흐바타르 주로 가는 길. 전날 첫눈이 내린 들판 위로 말과 소, 양 떼가 지나고 있다.
지난 9월, 모처럼 떠난 여름 휴가지에서 메시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기후환경팀에서 몽골 현지로 떠나 기후 위기 현장을 취재할 파견자를 지원받는다는 내용의 메시지였습니다. 약 2년간 사회팀에서 일하며 각종 사건 사고 취재를 맡아왔습니다. 화재와 교통사고, 살인사건 취재 현장에 익숙해진 저에게 ‘기후 위기’ 현장 취재는 새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몽골의 기후변화, 그로 인한 피해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이번 취재에 꼭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큰 고민 없이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몽골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기후 위기 현장을 취재해 보도하는 <아시아 임팩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유목민과 게르, 드넓은 초원을 질주하는 말과 징기스칸. 몽골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입니다. 멋진 자연경관을 가진 나라라는 점이 더욱 알려지면서 몽골로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하루에 10시간 남짓 차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이동해야 하는 여행지, 화장실조차 제대로 없는 여행지, 그 모든 것을 겪은 후에도 몽골을 ‘인생 여행지’로 꼽는 지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몽골이 겪는 기후 위기는 더 낯선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몽골의 상황은 어떤지, 몽골인들은 대체 기후 위기로 어떻게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지 제 두 눈으로 확인해 시청자들께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 울란바토르에서 수흐바타르 주로 가는 길. 포장된 도로였지만 군데군데가 웅덩이처럼 파여있다.
[혹한, 사막화, 홍수까지. 기후재난 집합소 몽골]
한적하고 평화로운 국가로 알려진 것과 달리 몽골의 지금은 그야말로 기후재난의 집합소입니다. 겨울에 발생하는 극심한 한파 재난, ‘조드(Dzud)’는 유목민들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10년 주기로 발생하던 조드는 최근 빈도가 잦아져 지난 10년 동안에만 총 6번 발생했습니다. 강도 역시 심해져 지난겨울 피해 지역은 몽골 21개 주 중 17개 주에 달하고, 전국적으로 7백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사망한 수준입니다.
조드 뿐만이 아닙니다. 사막화 역시 계속 진행돼 드넓었던 초원의 면적은 계속 좁아지고 있고, 수도 울란바토르 인근에선 홍수 피해 역시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에 강도 역시 거세진 재난에 대비할 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겁니다.
▲ 수흐바타르 주 무카한 숨 기숙학교에서 유목민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는 아동을 인터뷰 하고 있는 MBC 팀과 세이브더칠드런 직원
[하얀 재앙 덮친 몽골]
10월 20일,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을 통해 몽골에 도착했습니다. 늦가을 날씨 정도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몽골엔 이미 영하 수준의 한파가 찾아왔고, 울란바토르는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본래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이동에 3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후에도 울란바로트 시내의 극심한 교통체증 때문에 수 시간을 소요하기 일쑤였습니다.
도착 다음 날,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수흐바타르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차량으로 9시간 넘게 이동했는데, 이동하는 길 대부분은 황무지로 보이는 벌판을 지났습니다. 간간이 유목민과 가축들이 보였지만, 쉽게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겨울, 수많은 유목민이 조드에 가축을 잃은 탓이었습니다. 수흐바타르 지역은 몽골에서도 조드로 인한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 중 하나로, 지난겨울에만 유목민들의 가축 45%가 폐사했습니다.
▲ 조드로 가축을 잃은 유목민, 시내에 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게르를 지키고 있다
[“가축도 사람도..모든 걸 잃었습니다”]
사실 취재팀은 몽골에 본격적인 한파가 찾아오는 때보다는 조금 이른 시기에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직접적인 재난 상황을 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지난겨울을 겪은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초원에 게르를 짓고 유목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주민부터, 유목 생활을 포기한 채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주민들까지, 취재팀이 만난 모든 주민이 지난 조드는 떠올리기조차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기온과 사람 키만큼 쌓이는 폭설에 가축의 80% 이상을 잃었고, 가족까지 잃기도 했습니다. 유목민들에게 가축은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기에 더 이상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지, 생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삶의 전부였던 초원이 이들의 모든 걸 앗아갔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자 세이브더칠드런 몽골 담당자들에게 갑작스러운 섭외 요청도 여러 번 드렸습니다. 가족을 잃거나, 조드 이후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주민들 등 여러 사례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른 유목민의 게르를 찾으려면 차로 수십 분을 이동해야 하는 환경이었음에도, 사례자를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모와 함께 살아갈 수 없음을 담담히 얘기하는 소년, 조드로 남편을 잃은 이야기를 하며 오열하는 어머니, 조드 이후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쓴웃음을 짓는 아버지. 이들을 인터뷰하는 모든 순간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 조드로 가축을 잃은 유목민, 지난 겨울 혹한 속에 시내를 오가던 남편이 사망했다. 현재 아들 내외와 손주와 게르에서 살고 있다
[초원 떠나니 생활고에 홍수까지]
수흐바타르에서 3일간의 유목민 취재를 마치고, 다시 9시간여 이동해 울란바토르로 돌아왔습니다. 울란바토르 남쪽 바양주르후 구로 향했습니다. 한국의 판자촌과 같은 곳으로 취약계층이 무허가 게르를 짓고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난해 여름 50년 만에 발생한 기록적인 홍수 피해로 온 마을이 잠겨버렸습니다. 홍수로 인한 피해 복구가 완료됐다고는 하지만,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땅은 빗물에 쓸려 내려간 형태 그대로였고, 가옥들 역시 제대로 보수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몽골에서, 홍수 발생 빈도는 점차 잦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홍수로 몽골 전국에선 3천8백 명이 넘는 인구가 터전을 잃었습니다. 폭우 역시 그중 하나인 겁니다.
▲ 몽골 가족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장영근 기자가 가족사진을 찍어 선물로 전했다
[미비한 책임에도 피해는 치명적]
몽골이 겪고 있는 기후 위기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몽골은 저개발국인 데다 인구도 350만 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습니다. 이에 몽골의 탄소 배출량 비중은 전 세계 0.1%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몽골이 겪는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극심합니다. 몽골은 지난 80여 년간 기온이 2.5도 올라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빠르게 뜨거워졌습니다. 그 영향으로 다양한 기후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피해 정도는 전 세계 국가 중에서도 손에 꼽게 심각한 수준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은 미미하지만, 피해는 가장 치명적으로 받는 겁니다.
취재하며 머지않은 미래엔 ‘몽골’ 하면 떠오르는 단어에 유목민은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취재 동안 꿈을 잃어가는 몽골의 아이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유목민이 되겠다던 소년은 조드 이후 오랜 꿈을 접었다고 말합니다. 유년 시절을 모두 게르와 말을 타며 보낸 청년 역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광산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10위 권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몽골의 오늘, 나아가 아시아의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MBC 이지은 기자의 몽골X기후위기 뉴스 보기
📍[아시아임팩트] 혹한·사막화·홍수까지‥기후재난 집합소 '몽골'
📍[아시아임팩트] 하얀 재앙 덮친 '초원의 나라'‥사람도 가축도 잃었다
📍[아시아임팩트] 기후난민된 유목민들‥초원 떠나니 생활고에 홍수까지
글.사진 이지은
2022년 MBC에 입사한 방송기자. 사회부에서 2년여간 취재 활동을 이어오다 2024년 기후환경팀 파견자로 선발돼 아시아 지역의 환경과 기후변화 취재에 참여했다.
편집자의 말 =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날라이흐구. 이곳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마이 포레스트 차일드(My Forest Child)'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나무 심기를 넘어, 아이들의 마음속에 환경 의식의 씨앗을 심는 의미 있는 활동입니다.
지난 10월, 프레스투어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아직 나무는 심어지지 않았지만, 날라이구에 위치한 119번 학교의 '에코클럽' 학생들의 눈빛에서 이미 싹튼 환경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몽골의 기후환경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의 깊이 있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학교 지붕에서 빗물을 모아 나무와 꽃에 물을 주고 있어요. 이런 작은 실천이 학교 환경을 바꾸고 있죠." 아동의 말에서 단순히 배우는 것을 넘어 실천하는 환경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진지했습니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주체예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해요."
세이브더칠드런의 '빨간나무 세그루 심기' 캠페인은 이러한 아이들의 열정에 날개를 달 것입니다. 또한 '어린이가 만드는 기후세상'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기후위기가 아동권리의 위기임을 알리고, 아동·청소년의 기후위기 대응 역량 강화를 돕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과 함께 기후위기 대응의 길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 교육 정보
📍아동 참여형 기후위기 인식 교육 프로그램 '어린이가 만드는 기후세상'
▲ 울란바토르 날라이흐구 에코클럽 학생들이 모여 새로운 기후환경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글.정리 나상민(커뮤니케이션부문) 협조 세이브더칠드런 몽골 Dagva Gerelmaa, Munkh-Erdene Khulan, Batzorig Chimegbat, Chuluun Batpurev, Maral Umirk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