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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 마케팅부장
5년 전 아프리카 말리의 두나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모자 뜨기 캠페인’으로 모은 아기모자도 전달하고, 짓고 있는 보건소도 볼 겸 출장을 갔다. 마을 예법에 따라 촌장님의 환영 인사말이 있었다. 영어, 프랑스어, 부족어로 통역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됐다.
촌장님은 우리를 “선의를 가지고 멀리서 온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선의를 받아들이겠으며, 마을의 남자들과 어른들도 힘을 모아 생명을 지키는 일에 힘쓰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이 번쩍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손님이고 그 마을 사람들은 주인이다. 나의 역할은 한국인의 선의를 대신 전달하는 것이다.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이 아닌 손님과 주인의 관계로 상황이 정리되자, 그 뒤로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태도도 달라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내게 초심이란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후원사업과 물품, 그리고 많은 기술과 지원을 제공하는 우리나라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국가나 사람들을 대할 때 한 수 가르치겠다는 선생도 아니며, 나처럼 해봐라 하는 멘토도 아니다. 사진기를 들이미는 홍보단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선의를 가지고 온 손님이다. 주인은 그들이다.
눈에 보이는 효율보다 자립 중요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움을 주기 전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현장을 반드시 알아야 하며 그 현장에 사는 사람들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을 믿는 순간 독이 되는 도움, 또 도움이 안 되는 미봉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점심시간에 한 분식집에서 식권을 들고 구석에 서 있는 10세 소녀를 본 적이 있다. 직장인이 북적대는 점심시간, 식권을 들고 혼자 점심을 먹기란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그 소녀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보았다면, 나 홀로 아동에게 점심 식권이 최선의 도움인가 고민해 봤을 것이다. 한 설문에 나온 아이의 대답이 가슴에 남는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혼자 있는 거, 외로운 건 정말 싫어요.”
‘오프라 에인절 네트워크’를 만들어 특히 여자아이들의 자립과 리더십 향상에 힘쓰는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사례는 단순히 도움을 제공하는 프로그램, 현장을 모르는 프로그램의 한계를 절감하게 해준다.
미국의 빈곤아동시설을 방문해서 그녀가 발견한 점은 아이들에게 개인 잠옷이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아동을 수용하다 보니 세탁이 편리한 통일된 옷을 지급할 뿐이었다. 오프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잠옷을 갖는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자존감을 살리는 일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만의 물건을 갖는다는 것은 집단양육시설에서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만약 개별적으로 이름을 새겨 넣은 잠옷을 지급하자고 하면, 현실을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현실이란 ‘세탁의 편리성과 아이의 자존감’이 비교되는 현실이다. ‘눈에 보이는 효율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수성’이 싸움을 하는 것이다.
그 싸움에서 편리함과 효율이 이길 것인가? 오프라 윈프리가 이겼다. 이 운동은 아이들에게 잠옷을 입히자는 운동이 아니라 ‘자신만의 물건’을 개별적으로 나눠줌으로써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 하자는 ‘자존감 회복 운동’이었다. 이것이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생각이 아닌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움의 방식이다.
(중략)
현장 면밀히 관찰하고 도와줘야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장으로 가야 한다. 도움을 주고 싶다면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보내며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면밀히 관찰하고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 도움이 되는 도움을 함께 만들 수 있다. 도움의 끝은 자립이다. 그 자립은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함께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움의 시작과 중심에 그들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_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 마케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