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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도주의의 날에
보도자료
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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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구호개발단체의 영국 본부는 1주일에 한 번씩 전세계 스태프에게 단체가 일하는 인도적 지원 현장의 최근 소식을 보내준다. 처음엔 재해와 분쟁으로 인한 재난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기가 질렸다. 단체에서 일한 4년간 본부가 인도적 지원 활동가를 파견한 지역이 50곳 이하로 떨어진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라이베리아에서 홍수가 난 네팔에 이르기까지 71곳의 재난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다. 고작 한 단체가 일하는 재난 현장이 이럴진대 전체는 오죽할까. 재난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곧잘 듣는데 그 말은 틀렸다. 규모와 세기, 벌어진 일과 벌어질 일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미 재난은 일상이다.


인도적 지원 현장 소식에는 재난 자체보다 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인지 활동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데, 단 하루 예외가 있다면 세계 인도주의의 날인 오늘이다. 2003년 8월19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유엔 건물 폭격으로 22명의 인도적 지원 활동가가 숨진 날을 기념하여 유엔은 위험과 역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활동가들을 기억하고자 인도주의의 날을 제정했다.


주말 내리 단체 본부가 보내온 활동가들의 사연과 유엔 기구, 구호단체들이 인도주의의 날을 기념하여 만든 사이트에서 인도적 지원 활동가들 수십명의 이야기를 읽고 들었다. 인도적 지원 활동가가 될 깜냥이 못 돼 뒷전에서 거드는 걸로 겨우 자족하는 나는 그들이 매우 각별한 결심으로 재난 현장에 갔으려니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엔지니어, 운전사, 사회복지사, 교사 지망생, 기자, 음악가 등 이전 직업과 배경은 다양했지만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간명했다. 그냥 “인간이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활동가는 2005년 7만명 이상이 숨진 대지진 때 가족을 다 잃은 사람을 보고 ‘저 일이 내게 일어났다면?’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고 이 질문이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치는 대신 되레 고통받는 사람들 옆으로 뛰어들었는데, 그냥 인간이라서 그랬다고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15일 시청 앞 광장에서 가수 김장훈씨가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단식하는 이유를 묻는 주변의 질문에 “인간이니까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말이 겹쳐 떠올랐다.


활동가들의 이야기에서 두번째로 자주 귀에 꽂힌 단어는 ‘존엄’이었다. 시리아의 활동가는 “인도주의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알 필요도 없이 존엄이 손상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곁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의 활동가는 “존엄이 침해된 사람들의 눈빛에 자신들을 염려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위안이 스칠 때”가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라고 했다. 존엄의 존중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한 인간이 모욕적 상황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내가 알고 있음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전할 수 있다.


인도주의는 머나먼 재난 현장에서 일하는 인도적 지원 활동가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재난이 일상이 된 지금 여기에도 매일의 모욕을 견디면서 아직 울음을 멈추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라서, 그들 곁에 달려가 함께 우는 이들이 있다. 인도주의의 날인 오늘, 그곳이 어디든 고통의 현장에 달려가 존엄을 손상당한 사람들 곁에 기꺼이 머무는 사람들을 기억했으면 한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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