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022년,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앞두고 KBS '시사기획 창'은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편을 방송했습니다. 암수범죄(暗數犯罪)란, 사건이 일어났으나 신고나 고발이 없어 수사기관에서 인지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범죄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범죄를 말합니다.
방송은 전문가와 함께 최근 2년 동안 전국 법원의 1심 형사 판결문 1천4백여 건을 전수 분석해, 아동학대 피해 아동 2,367명과 가해자 1,406명에 대한 기록을 추적한 뉴스 보도이자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추적해 아동학대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를 진단하면서, 미국의 아동학대 사망근절위원회(CECANF) 등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사회와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 KBS 시사기획 창 360회
📍2022.2.6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방송 다시보기
방송을 시청한 우리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보냈던 신호를 왜 알아채지 못했는지에 대한 미안함과 이 아이들이 사라질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과 어째서 아이들의 사망을 막지 못했는지에 대한 후회와 분노였죠. 더불어 아동의 사망 원인과 관련한 체계적인 분석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을 취재한 이형관, 차주하, 윤경재 기자는 방송기자상을 수상했으며, 프로그램 역시 올해의 데이터기반 탐사 보도상, ABU상(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뉴스보도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 KBS 시사기획 창 '암수범죄, 아동학대를 부검하다' 의 일부를 함께 시청 중인 토론 참석자들
세이브더칠드런은 12월 초 아동사망검토제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정확한 행사명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아동사망검토제도 입법토론회'입니다.) 이 토론회는 아동의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예방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정책으로서 아동사망의 사례검토 및 예방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아동 SOS 법’을 제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동사망검토제의 핵심은 아동의 사망 사건 발생 시, 각종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적 대책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법안은 아동사망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아동 사망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각 사망 사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를 도출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통계청과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지난해 1,670명의 아동이 사망했는데요. 이 중 44명이 학대로 인한 사망으로 보고됐으나, 정부 발표 통계는 범죄 혐의가 입증됐거나 언론이나 수사를 통해 알려진 자녀 살해 후 자살만을 학대피해 사망 아동으로 집계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 아동사망검토 및 예방에 관한 법률 제정 제안을 발제한 사단법인 온율 전민경 변호사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사단법인 온율의 전민경 변호사는 전체 아동 사망의 원인 중 약 40%가 고의적 자해, 타살, 익사 등 외부요인에 의한 사고로 나타나, 아동 사망에 대한 깊이 있는 조사와 예방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정 내에서 아동학대로 사망할 경우, 현재의 체계에서는 발견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의심되는 모든 아동 사망의 원인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제도가 필요한 것이죠.
2023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과 공동으로 아동사망검토 입법 방향을 논의해 온 전 변호사는 의사, 법률 전문가, 아동 복지 전문가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한 아동사망검토위원회를 만들어야 하며, 아동의 사망 사건을 전문가가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사건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 기록함으로써 아동의 생명 보호를 위한 체계적인 정보를 축적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정부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예방책 및 아동보호 정책을 수립함은 물론, 아동보호와 관련한 정책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함으로써 단발적인 사건 분석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정책 모니터링과 개선을 통해 아동 보호 체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전 변호사는 아동사망검토제가 성공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아동사망검토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보장을 보장해야 하고, 이 법안이 실제로 아동 보호 정책에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협력과 실행력을 요구했습니다. "중앙과 지방의 아동 사망 검토 이행 기구는 상호 유기적인 검토 수행을 해야 합니다. 국가 아동사망 정보 시스템 또한 유관기관, 즉 사회보장 정보 시스템, 통계청의 사망 신고 정보, 경찰의 형사사법 정보 시스템 등과 연계해 시스템을 활용하고, 국가 아동 사망 통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또한 국가 아동사망 검토위원회는 대통령 산하의 상시적 기구로서, 사망 원인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사망에 대한 검토해야 합니다."
그는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사회에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아동의 죽음이 여전히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추정하면서 은폐되는 아동학대가 지금 살아있는 아동의 생명에도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제안한 아동사망 검토 제도가 실행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아동사망 검토 제도 자체가 미뤄져서는 안 되는 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미국의 아동사망 검토제도를 발제한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부 강지영 교수
이어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부 강지영 교수는 일찍이 아동의 사망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 체계와 법적 근거를 마련한 미국의 아동사망검토제를 소개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아동사망검토제는 아동학대 및 방임으로 인한 사망 사례 검토에서 시작되었는데요. 2020년 기준, 미국의 모든 주에서 아동사망검토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주별로 약간의 내용은 다릅니다).
미국의 아동사망 검토 대상은 최소한 아동 학대와 방임으로 인한 사망을 포함했습니다. 이후 점차 범위를 확대해 신생아 돌연사, 사고로 인한 사망, 자살, 살인, 아동 보호를 받았거나 받지 않았던 아동의 사망까지 포함했죠. 일부 주에서는 사망이 아닌, 중상해 사례도 검토 대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아동사망 검토 팀은 경찰, 아동 보호 서비스 실무자, 검시관, 의료 전문가, 응급 서비스 제공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데, 핵심 인력과 임시 인력으로 구성되며, 각 사례에 따라 추가 인력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가정 폭력이나 장애, 정신 건강 등의 문제와 관련된 인력이 임시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죠.
아동사망 사례의 검토는 크게 네 단계- 1단계 사망 사례의 이해, 2단계 개선 방안의 논의, 3단계 결과 전달, 4단계 종합적인 개선 방안 마련-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는 비난을 지양하고, 향후 유사한 사례에 대한 대응 방안을 찾는 데 중점을 둡니다. 미국 대부분의 주는 아동사망 검토 제도를 법적으로 의무화하거나 허용하고 있으나 법적 근거는 주마다 상이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법령이나 규칙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아동 학대 및 방임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서는 연방 차원에서 법적 절차와 주체를 명시하고 있어, 아동사망 검토 팀이 이를 협력하거나 상위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구조이죠.
아동사망 데이터는 연방 차원의 아동 사망 검토 및 예방 센터가 관리합니다. 이 센터는 민간 기관이지만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며, 2005년부터 아동사망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각 주는 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아동사망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분석해 예방책을 제시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죠. 강 교수는 "미국의 아동사망 검토 제도는 매우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방법으로 아동 사망의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책을 제시하는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제도는 다른 나라들, 특히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며, 향후 아동 보호 정책 개선을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 토론의 좌장을 맡은 한국아동복지학회 박명숙 회장과 토론자로 참가한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
이어지는 토론에는 한국아동복지학회 박명숙 회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 보건복지부 아동학대대응과의 윤수현 과장, 그리고 부천시아동보호전문기관의 홍현정 관장이 참석했습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아동 사망 검토 제도의 법제화와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죠. 박명숙 회장은 "아동의 죽음이 사회 복지 제도 개선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사전 예방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며, 아동사망 사건을 사후적으로 분석하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임을 강조했습니다.
김수정 변호사는 2013년에 울주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진상조사 및 제도 개선 활동에 참여한 경험을 공유하며, 아동사망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의 필요성을 알렸습니다. 특히, 민간 조사위원회의 한계를 언급하며, 공적 체계 내에서의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모든 아동의 사망을 조사, 검토해서 궁극적으로 아동사망을 예방하고자 하는, 매우 진일보한 법안이며 꼭 입법화되기를 바랍니다. 아동학대 사망뿐만 아니라 질병, 사고, 자연사 등 모든 아동사망 사례를 체계적으로 조사를 하려면 독립적인 아동 사망 검토위원회를 설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찰, 의료기관, 아동보호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공동의 책임을 지고 사망 사건을 분석하고 대응하며, 사망 사건 발생 시 각 기관으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 유기적으로 잘 운용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토론에 참가한 부천시아동보호전문기관 홍현정 관장과 보건복지부 아동학대대응과 윤수현 과장
홍현정 관장은 현장에서 겪었던 아동학대 사망 사건 중, 9세 아동의 사망 사건에서 중요한 진술을 한 사람은 아동의 오빠(12세)였으며, 이와 같이 진술이 없으면 아동학대 사건을 밝혀내기 어려움을 전했습니다. "아이(오빠)가 진술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밝혀질 수 없었어요. 죽은 아이는 이미 사망했고, 엄마는 진술을 다 거짓말했어요. 사실 아이의 오빠가 얘기한 사건이 너무나도 끔찍한 상황이었어요. 동생이 학대당하는 과정을 보았고, 자기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과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대한 부분이 컸고요."
특히 홍 관장은 아동보호 전문기관 현장에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특례법이 변화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체계 안에서도 일하기 위해선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또 능숙하게 다루기 위한 시간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에서 아동학대의 증거를 확보하고, 아동 보호를 위한 제도적 한계와 아동보호 기관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동사망 사건에서 부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사망 원인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조사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 무엇보다 생태체계적인 관점에서 위험 요인을 파악해 깊이 분석해서 현장을 촘촘한 거름망으로 작동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필요합니다."
윤수현 과장은 아동사망 검토 제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실질적으로 이 제도를 집행할 때 효율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보다 세부적인 규정과 명확한 범위 설정이 필요함을 짚었습니다. 특히, 법률안 제19조에서는 ‘질병’이나 ‘외인’에 의한 사망 등 여러 종류의 아동사망을 다루고 있지만, 자살과 같이 예기치 않은 사망까지 포함해야 할지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죠. 또한 아동 학대와 관련된 업무의 과중함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아동사망 검토를 추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아동 학대와 관련해 지자체 공무원의 업무 부담과 전문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시군구 단위의 사례 결정위원회나 정보연계 위원회의 전문가 풀을 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관련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을까 하는 점들에 우려가 있습니다."
▲ 아동사망검토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 박명숙 회장, 전민경 변호사, 강지영 교수, 홍현정 관장, 윤수현 과장, 김수정 변호사
전문가들은 아동사망의 원인과 그에 따른 제도적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아동 보호와 사망 예방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특히 아동사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기관 협력과 정보 공유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죠.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아동사망검토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범위, 대상, 절차 등 여러 측면에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앞으로 아동사망의 사례검토 및 예방에 관한 법률이 어떻게 시행되고,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취재.글. 나상민(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권리옹호부문 아동권리정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