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동·청소년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고 합니다. 아동·청소년들은 디지털 기기가 익숙한 만큼 개인정보 중요성도 잘 알고 있을까요?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알고 있을까요? 세이브더칠드런이 아동·청소년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동의’에 동의하는 아동들
세이브더칠드런은 전국 만 10세~18세 아동 1,000명을 대상으로 ‘2023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보호 인식조사’를 했습니다. 조사에 응답한 아동에게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에 동의한 경험이 있었는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 온라인환경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조사 결과, 많은 아동이 개인정보제공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동의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응답한 아동 90.2%가 인터넷 서비스 이용시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에 동의한 경험이 있었지만, 개인정보제공 동의에 따라 위치 정보 등 다양한 자신의 정보가 제공될 수 있음을 아는 비율은 55.2%에 그쳤습니다. 이중에는 핸드폰 사용, 온라인 게임을 하는 나이도 낮아지고 있기에 10~12세 아동들도 개인정보제공 동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동들은 개인정보제공 동의의 세부적인 내용도 어떻게 활용되는지도 잘 알지 못하지만, 서비스 이용을 위해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에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마케팅용 개인정보제공 내용을 이해하는지 묻는 질문에 ‘이해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46.8%였습니다. 마케팅용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할 경우에는 개개인 특성에 맞춰진 타깃 광고에 개인정보가 이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사에 응답한 아동들 중 5.6%만이 일반 콘텐츠와 광고를 잘 구분할 수 있다고 응답하였고, 94.6%가 ‘아동을 대상으로 한 타깃 광고가 걱정된다’고 응답했습니다.
잊힐 권리 보장을 바라는 아동들
아동은 개인정보제공 동의, 정보 활용에 대해 눈높이에 맞는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조사에 응답한 대다수 아동이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온라인에 게시된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잊힐 권리’ 보장에 아동 85.5%이 찬성한다고 응답하였고, 아동 97.7%가 동의 없이 게시된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청하고 싶다고 응답했습니다. 아동들도 온라인상에 남겨진 기록을, 특히 자신의 동의 없이 게시된 정보를 삭제할 권리 보장을 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동이 온라인상에서의 보호받을 권리를 바라는 현실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법제도는 더디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권리 보장보다 더 빠르게 온라인 범죄가 교묘하고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타인이 올린 나의 개인정보를 삭제할 권리
지난 8월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사진을 합성해 만든 성착취물이 유포되고, 이를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하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아동·청소년 피해가 심각했고, 청소년이 친구나 연예인의 사진을 성착취물로 제작한 범죄도 많았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쉽게 타인의 사진을 구할 수 있고, 딥페이크 기술로 성착취물도 쉽게 만들게 됐습니다. 제작도 유포도 손쉬워지고, 이러한 범죄에 노출되는 청소년이 과거보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악의적인 범죄로만 아동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21년 시작한 ‘셰어런팅(Sharenting) 다시보기 캠페인’을 통해 <셰어런팅 예방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하고, 아동 사진, 영상 게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실제 양육자가 아동의 일상을 SNS에 공유하는 셰어런팅이 아동의 거주지, 학교 등에 신상정보를 노출하고, 성범죄에 악용되는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양육자와 사회의 인식 변화만큼이나 법제도적 보완도 필요하기에 2023년부터는 ‘딜리트더칠드런’ 캠페인을 통해 온라인 환경에서의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잊힐 권리’의 법제도화를 요구해왔습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삭제 및 처리 정지를 요구하는 디지털 잊힐 권리 시범사업 ‘지우개(지켜야 할 우리의 개인정보) 서비스’를 2023년 4월부터 시행 중입니다. 지난 1년 동안 1만 7,148건이 접수됐고, 이 중 1만 6,518건이 삭제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본인이 올린 게시물로 한정되어 부모나 제3자가 올린 게시물 삭제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아동이 딥페이크 범죄처럼 자신도 모르게 게시된 사진, 영상을 알게 되거나, 다른 사람이 올린 자신의 개인정보가 악용될 우려가 있어도 삭제를 요청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아동의 ‘잊힐 권리’를 기억해 주세요
지난 9월에는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아동과 청소년의 잊힐 권리가 충분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동에게 안전한 온라인 환경을 만들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망도 시급히 만들어져야 합니다.
‘딜리트더칠드런’ 캠페인 시즌2는 ‘제 3자에 의한 아동 개인정보 노출’ 피해의 심각성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 마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제 3자가 올린 게시물에 아동의 개인정보가 노출되거나, 온라인상에서 유포됐을 때, 이를 삭제할 수 없다면 아동은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아동의 잊힐 권리 보장의 중요함을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글 미디어팀 문지은
사진 세이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