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소말리아는 수년간 비가 내리지 않은 탓에 40여 년만의 최악의 가뭄을 맞았습니다. 국가 전역의 목초지와 농작물, 가축까지 모조리 황폐해졌습니다. 지난해 대두된 기근으로 국제 사회의 원조가 증가했고 약간의 비가 내리면서 긴급한 경보는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2011년 26만 명이 사망한 심각한 기근의 위협은 현재도 여전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유엔은 소말리아의 비상사태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기후와 식량 원조가 소말리아 인구의 40%에 달하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4월 말, 세이브더칠드런은 소말리아 남서쪽에 위치한 바이도아(Baidoa) 지역을 방문해 상황의 심각성을 살피고, 소득 감소와 식량 수급의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의 피해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길에 MBC 기후환경팀의 김민욱 기자와 뉴스영상팀의 위동원 기자가 함께했습니다. 소말리아는 대한민국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 국가이기에 시작부터 쉽지 않았던 여정의 생생한 후기를 김민욱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2022년 6월 어느 날, 이메일이 한 통 들어왔다. ‘[세이브더칠드런] 기후위기 x 에티오피아 프레스 투어 신청 안내’란 제목의 메일이었다. 많은 기관에서 메일을 받고 있어서 중요한 메일도 놓치기 일쑤였지만 이 메일의 제목은 유독 크게 보였다.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를 취재할 수 있는 기회. 2년 동안 국내의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피해 현장을 취재한 기자로서 꼭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착순’이란다. 바로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에 전화를 걸었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는 가지 못했다. 현지 치안 사정이 악화했고 한국에서 에티오피아 취재 비자를 발급받을 방법도 없었다. 한 달 동안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준비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8개월 정도가 흐른 지난 3월, 고맙게도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가 우리를 잊지 않아 줬다. 다시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엔 소말리아였다.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해적’ 아니고 ‘기후위기’의 나라, 소말리아]
소말리아라면 아프리카에 별 관심이 없는 한국인이라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나라일 것이다. 물론 좋은 기억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선박들이 몇 차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적이 있다. 삼호주얼리호 구출을 위한 ‘아덴만의 여명’ 작전도 떠오른다. 재작년에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남북의 외교관들이 탈출하던 상황을 다룬 영화 <모가디슈>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뭔가 다 위험해 보인다. 오랫동안 내전을 겪은 소말리아가 불안정한 지역인 것은 사실이다.
▲ 22년 6월 소말리아의 기근 상황을 나타내는 지도. 심각한 위험을 뜻하는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FEWS NET
하지만 지금 소말리아는 ‘해적’보다 ‘기후위기’로 기억돼야 옳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의 국가가 자리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은 연중 두 차례의 우기가 있다. 3월과 9월인데 지난 2020년부터 작년까지 연속적으로 우기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40년 만의 극심한 가뭄이었다. 많은 전문가가 이 가뭄의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강우 패턴이 변하고 기온이 상승하며 증발산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굶주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30년째 이어지고 있는 ‘내전’도 재난을 키웠다. 소말리아의 많은 지역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장악하고 있다. 국제기구나 구호단체의 지원이 도달하기 어렵다. UN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작년 한 해에만 4만 5천 명가량이 소말리아에서 가뭄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불안정한 지역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지난 2007년부터 한국인의 소말리아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인도적, 공익적 목적의 방문일 경우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출국 예정일을 불과 5일 앞두고 취재 목적의 방문 허가가 나왔다.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된 이후 한국 언론사의 소말리아 취재 허가는 처음이었다. 4월 25일 위동원 영상 기자와 소말리아 아덴아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 나라의 수도 국제공항에 민간 여객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UN(국제연합)이나 WFP(세계식량기구)와 같은 국제기구의 로고가 크게 쓰여 있는 비행기와 헬리콥터들이 더 많았다.
▲ 모가디슈 공항 활주로의 UN 헬리콥터. 공항에는 민간 여객기보다 구호물품 운송을 위한 국제기구의 항공기가 더 많았다. ⓒ김민욱
[끝이 보이지 않는 난민촌]
다음 날,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바이도아로 향했다. 바닷가인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륙인 북서쪽으로 2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이다. 바이도아는 이슬람 무장단체에 사실상 포위된 상태이다. 육로를 이용해 갈 수가 없다. 공항에 국제기구의 항공기가 많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좌석 수보다 승객이 많아 한 명을 복도에 앉힌 채(?) 이륙한 작고 낡은 비행기는 40분 뒤 바이도아 상공에 도착했다. 도시는 온통 하얀 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난민촌의 텐트였다. 영어로는 IDP(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캠프, 즉 자국 내 이주민들의 임시 거주촌으로 불린다. 바이도아에는 이런 난민촌이 도시 외곽에 500개가량 형성돼 있다. 난민의 수만 50만 명을 넘는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소말리아 바이도아 난민촌의 모습. 가운데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은 취재팀의 무장 경호원이다. ⓒ김민욱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타고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검문소를 여러 개 통과한 뒤에 난민촌에 도착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난민촌의 텐트는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천막을 덮어서 만들어졌다. 천막에는 UNHCR(국제연합난민기구)이이나 US AID(미국 원조), UK AID(영국 원조)와 같은 문구들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비나 바람도 막기 힘들어 보였다. 보통 집으로 이용하는 텐트 앞에 작은 텐트를 하나 더 치고 생활하던데 이게 부엌이었다. 이런 임시 거처에 5명이 넘는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준비 단계에서 소말리아를 취재한 외신 보도 영상을 통해 여러 번 접했던 모습이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말문이 턱 막혔다. 나름 14년 차 기자였지만 처음 보는 취재 현장의 모습에 무슨 취재를 어떻게 시작해야 잘 정리가 안 됐다. 일단은 난민들을 여럿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대부분은 바이도아에서 수십 혹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며 가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비슷했다.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소말리아 주민 상당수는 농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키운다. 그런데 3년 동안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면서 땅에서는 싹이 돋아나지 않았다. 소나 염소도 견뎌내지 못하고 죽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 그나마 공항이 있고 아프리카 연합군이 지키고 있는 바이도아에는 국제사회의 원조가 도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들과 함께 며칠을 걷고 또 걸어 바이도아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이도아도 그저 생존이 가능한 곳에 불과했다.
▲ 바이도아 난민촌에서 세이브더칠드런 소말리아 현지 직원과 함께 촬영 중이다. ⓒ김민욱
조심스럽지만 아픈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세이브더칠드런 소말리아 담당자들에게 요청했다.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거나 아이가 아픈 사례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사람을 찾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식을 잃는 것이 이곳에서는 빈번한 일이었다. 더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인터뷰이가 담담하게 답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다른 고통의 무게가 무겁다는 뜻일 것이다. 잠시 뒤에는 한 아이를 안은 어머니를 인터뷰했는데 이제 두 돌이 지났을 법한 아이는 자꾸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앞을 보지 못했다. 홍역을 앓아서 그렇게 됐다는데 마이크를 잡고 있는 나의 손을 자꾸 붙잡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UN이 파악한 작년 소말리아 가뭄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은 5살 미만의 아동이었다. 2만 명이 훌쩍 넘는 아이들이 목숨을 잃은 건데 가장 큰 이유는 영양실조다. 영양상태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이 질병에 걸리고 제때 제대로 된 치료받지 못하면서 끝내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것이다.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10대 청소년들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대부분이 말라리아, 홍역과 같은 병에 걸렸던 경험이 있었다.
▲ 바이도아 난민촌 이동진료소의 모습. 아픈 아이를 안은 어머니들로 북적인다. ⓒ김민욱
[소말리아는, 그리고 아이들은 죄가 없다]
취재는 이틀 동안 이뤄졌다. 난민촌을 네 곳 방문했고 현지 이동 진료소와 아동 병원을 취재했다. 머릿속에서 ‘기후불평등’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 기후불평등. 기후변화를 야기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지난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배출된 온실가스 때문이다. 아프리카가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은 이중 단 3%에 불과하다. 서구 선진국, 한국과 같은 고도 산업화한 국가들의 책임이지만 고통은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 물에 잠겨가는 태평양의 섬나라 국가의 몫이 됐다. 그중에서도 더욱 취약한 것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난민촌의 이동진료소 앞에는 매일 아침 아이를 안고 동동 발을 구르는 엄마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기후위기는 취약한 아이들을 더욱 괴롭히고 있었다.
▲ (왼쪽) 아동병원에서 아픈 아이에게 유동식을 주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오른쪽) 현장을 촬영하고 있는 위동원 기자 ⓒ김민욱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10위 권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기후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먼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조금씩 우리의 목을 옥죄어 오고 있다. 기습 호우로 인한 반지하의 침수, 해수면 상승, 잦아지고 대형화되는 산불. 한국도 결코 기후변화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당장 지구의 기온 상승을 늦추거나 멈추기 위한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계획들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소말리아의 고통은 소말리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의 차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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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민욱
2008년 MBC에 입사한 방송기자. 사회부, 기획취재부 등을 거쳐 2020년부터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해 취재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그 영향을 다룬 기사들로 2022년 한국방송대상 방송기자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