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네팔은 국토 대부분이 산악 지대로,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우기에 산사태가 자주 발생합니다. 네팔의 우기는 통상 9월 중순이면 끝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올해는 인도 일부 지역의 저기압이 계속되면서 일주일 넘게 길어졌습니다. 혹독한 기후위기 속에서도 지역 주민이 직접 나서 기후위기에 적응하고, 아동의 미래를 지키고 있는 네팔에 MBC 기후환경팀의 김현지 기자와 뉴스영상팀의 이종혁 기자, 최대환 기자가 함께 다녀왔습니다. 폭우로 취재 길이 막혔던 현장의 이야기를 김현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히말라야 지역의 기후변화 속도는 전 세계 평균보다 세 배 빠르다고 한다. 눈보다 비가 많이 내리면서 홍수와 산사태는 급증했다. 네팔에서 가장 빈곤한 주, 카날리주에서 확인한 기후위기 현장은 특히 아이들에게 처참했다. 살아갈 땅이 없어지고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기고 있었다. 최근 우리 헌재는 정부의 미흡한 기후위기 대응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탄소중립법’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기후위기 정책에 있어서 미래세대는 중축이 돼야 한다. 그 이유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비가 오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네팔 아이들]
“홍수로 학교 가는 길이 막히고 산사태로 돌이 굴러와 무서워요.”
우리는 원래 체다가드 마을에 있는 학교에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만나 함께 나무를 심을 계획이었다. 외국인 취재진을 만날 생각에 들뜬 아이들은 미리 나무를 심을 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날 아침 우리는 학교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산길을 올랐다. 아침에 내린 비로 계곡이 되어버린 길을 덜컹거리며 지났는데, 결국 흙더미에 길이 막혀 멈춰 섰다. 산사태가 난 것이다. 길을 따라 산사태가 계속 발생해 결국 일정을 취소했다. 계획을 논의하는 도중에도 우리가 서 있던 길 옆면에선 ‘우수수’ 소리가 나며 토사가 쏟아졌다.
급히 수르켓에 있는 학교를 섭외해 다음 날 취재에 나섰다.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다섯 살부터 열네 살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아이들에게 날씨에 대한 노래가 있냐고 물었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은 한 교실에 모여 ‘홍수와 산사태로 학교를 갈 수 없어 무섭다’라는 노래를 합창했다. 전날 산사태로 길이 막힌 기억이 떠올랐다. 우기에는 홍수와 산사태로 전체 학생 백 명 중 열 명도 채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하굣길에 따라가 봤더니 산사태로 바위가 나뒹구는 길과 성인 무릎까지 오는 물웅덩이를 건너야만 했다. 아이들은 한 시간 넘게 이런 길을 매일 걸어가야 한다.
[기후변화는 아이들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다]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눈 한 열네 살 학생은 최근 기후변화가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에 가고 싶어도 비가 오면 작은 계곡물이 불어나고 굵은 빗줄기를 감당할 수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인 것 같아요.”
해발고도 1,400m가 넘는 곳에 있는 또 다른 학교는 이번 우기에 지붕이 날아갔다고 한다. 벼락을 맞아 무너진 지붕이 강한 비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숫자와 로마자 알파벳 낙서가 남겨진 건물이 천장이 뚫린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바로 옆에 학교를 새로 지었지만, 산사태로 그 부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학생 삼백 명이 다니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우기에는 교실이 텅 빈다.
유엔 산하 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네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비율은 30%도 안 된다. 특히 가정 형편에 따라 격차가 컸는데, 부유층은 70%, 빈곤층은 10%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마저도 산사태와 홍수 같은 재난 탓에 빈곤층의 등굣길은 더욱 막히고 있다. 실제로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이런 재난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기후변화는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다.
[모든 것을 떠나 보낸 사람들, 의료시설은 보건소 뿐]
기후변화는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을 주지 않는다
홍수로 집을 잃고 10년 넘게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이재민들도 만났다. 2014년 베리강 홍수로 80 가구가 이곳으로 이주했다. 이 중 절반은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경제적 능력이 없어 마을을 떠나지 못한 40 곳만이 남아있었다. 지붕은 지푸라기를 엮어 얹었고, 얇은 나무 기둥에 진흙을 덧대 집을 만들었다. 흙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변변한 문이나 창문은 없었다. 이곳은 정부에서 지원한 임시 거주촌으로, 영구 거주가 불가능해 콘크리트 건물은 세울 수 없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한 50대의 남성은 뇌졸중으로 한쪽 다리는 마비됐고, 자녀들이 일용직 노동을 통해 벌어오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10년 전 홍수로 집과 밭을 잃었고, 아내와 아들도 떠나보냈다. 밤 열두 시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강물이 넘쳐 집 안을 덮쳤고 어디가 땅인지,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간신히 산 위로 도망쳤지만, 아내는 나무를 잡고 버티다 강물에 휩쓸렸다. 그렇게 모든 걸 강물에 떠나보냈고 이곳에서 10년 동안 어머니와 이재민 신세로 살고 있다.
[마실 물도 부족해]
여기에 잦은 홍수와 산사태로 도로가 끊기면서 생필품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대부분 일용직으로 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마을 주민들은 높아진 물가에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수도시설도 미비해 마실 물도 부족했다. 카날리주 주민 80%가 식량부족을 겪어봤을 정도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앞으로 2050년까지 네팔이 기후변화로 매년 GDP의 2.2% 손실을 볼 것으로 예측했다. 그 타격은 빈곤층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건장한 성인 남성은 타지에서 일할 기회를 찾을 수 있지만 여성과 아이, 장애인은 마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취재진이 띄운 드론이 신기한지 어느새 어린아이 열 명 남짓이 모여들었다. 걸음을 갓 뗀 아기부터 열 살이 채 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오두막집에서 태어나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이용할 수 있는 의료시설은 보건소뿐이다. 예방접종은커녕 제때 치료받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인근에 학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앞서 만난 학생들처럼 한 시간 넘게 걸어가야 겨우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세계기상기구는 아시아가 기후변화로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네팔을 포함한 남아시아 지역이 가장 취약했다. 기후변화는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을 주지 않았다. 회복하기 전에 또 재난이 덮치는 것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집이 무너질까, 학교를 가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취재 중에 비가 갑자기 쏟아지다 그치길 반복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잠시 지붕 아래에 숨었다가 비가 그치면 나왔다. 진흙과 돌멩이가 깔린 산길을 얇은 슬리퍼만 신고 올라갔다. 이 아이들이 내뿜는 온실가스양은 얼마나 될까?
기후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온실가스 때문이다. 가장 큰 책임은 선진국과 한국을 비롯한 산업화한 나라들에 있다. 이들이 뭉그적거리는 동안 정작 삶을 빼앗기고 있는 건 이곳의 아이들이다. 지난 9월 말, 네팔에는 22년 만의 폭우가 내렸다. 하루 최대 300mm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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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현지
2021년 MBC에 입사한 방송기자. 사회부 등을 거쳐 2024년부터 기후환경팀에서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해 취재하고 있다.
편집자의 말 = 프레스 투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9월 말, 네팔 전역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폭우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로 5천여 가구가 피해를 보았고 수백 채가 파괴되었습니다. 최소 14명이 아동이 사망했으며, 수천 명의 아동과 가족은 집을 잃었습니다. 카트만두 계곡은 9월 28일 역대 최고 강우량을 기록했는데, 한 측정소에서는 단 24시간 동안 240mm에 가까운 비가 내렸다고 보고했습니다. 최소 54곳의 학교가 문을 닫았고, 주요 도로가 막히고 전력이 끊겨 구조 작업 역시 어려워지는 등 지난 수십 년간 겪었던 가장 심각한 폭우 중 하나로 기록됐다고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네팔 카날리 주 체가하드와 바라하탈 지역에서 산사태, 홍수, 가뭄의 피해를 본 아동과 주민을 위해 기후위기 대응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피해지역에 나무를 심어 숲을 복원하고, 아동과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기후 교육과 캠페인을 통한 기후 회복력을 강화함으로써 기후위기로부터 아동의 미래를 구할 것입니다. 언제나 아동과 함께하겠습니다.
글.정리 나상민(커뮤니케이션부문) 사진 신지은(커뮤니케이션부문) 협조 세이브더칠드런 네팔 Aryal Prachi, Adhikari Niraj, Tiwari Durga, Ram Rawal, Dik Dawadi